“1등 해봐야 업무 강도 높아질 뿐”
은행 총파업 이슈 끝나자 노동이사제 도입 이슈 발생
조직 내 소통 문화 저하가 은행원의 경영진에 대한 불신 양산

“은행원이 공무원처럼 안정적이라는 말은 옛말입니다. 매년 수익 목표치를 보면 ‘이걸 어떻게 달성하나’ 싶습니다. 안정된 직장이라는 생각을 잘 못합니다. 비대면 거래도 당연한 명제가 되면서 은행원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현실인 거죠.”

한 은행원의 토로다. 그는 밖에서 보는 은행원의 모습이 안정적이라는 말에 은행원 다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년 이어지는 최대 실적 달성이 자부심이 아니라 압박이라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최근 은행원들 사이엔 ‘1등 은행은 피하자’라는 이야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돈다. 리딩뱅크 타이틀이 매년 더 강한 업무 압박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생각은 어떨까. 한 은행 임원과 티타임을 가졌는데 ‘은행의 고민’이 뭐냐는 질문에 가장 처음 나온 단어가 ‘인건비’였다.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대부분 인건비로 지출하니 남는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은행만큼 고임금 업종도 없다는 것이 은행의 고민이었다. 경영자 입장에서 은행원 감축은 ‘1등 은행’의 필수요건이었다. 

은행원은 ‘리딩뱅크 만은 피하자’ 하고 은행 경영진은 ‘기필코 1등’을 말하는 현실. 은행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올해 은행권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이슈는 KB국민은행 노조의 총파업이다. 다행히 노사가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자칫 구정을 전후로 몇 차례 총파업이 더 이어질 뻔했다. 이번 노조 총파업에는 유독 비난이 많았다. 일반 국민 시선에 노조 파업은 ‘고임금 은행원의 파업’으로 보였다. 고객 불편을 담보로 한다는 점 때문에 여론이 싸늘했다. 이 점을 노조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는 ‘은행원도 노동자다’라는 것이었다. 경영진에 할 말조차 못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파업은 마무리됐지만 금융권 이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달부터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을 놓고 금융권이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KB금융지주 노조에선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을 추진한다. 백승헌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IBK기업은행 노조도 노동이사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은행 노조는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노사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봤다. 신한은행이나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노조에선 이와 관련한 계획은 없지만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노동이사제처럼 찬반이 명백히 갈리는 쟁점도 없다. 어느 쪽 하나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접점을 찾기 어려운 과제다. 다만 은행권에서 유독 노동권과 관련한 이슈가 왜 심한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만 이 문제들도 풀릴 여지가 생길 것이다. 지금 은행 내부에선 경영자와 근로자 간의 불신이 팽배해 있을지도 모른다. 최고경영자에 대한 퇴진 운동이 지난해만 해도 대형 은행들에서 몇 차례 일어났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조직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소통이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조직 내 불통을 놔두면 그 자리에 불신이 싹트기 마련이다. 그럼 노동자는 경영 판단의 투명성을 믿지 않는다. 

거기에다 경영진의 생각이 노골적으로 직원을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은행원이라고 좋을 리 없다. 그럼 은행원은 때만 되면 나갈 생각을 할 뿐이다. ‘은행원은 좋은 직업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은행원 스스로 하는 조직은 결코 건강한 조직이 아니다. 지금 은행권이 이렇게 변하고 있을지 모른다. 경영진은 밖으로 ‘1등’을 외치고 내부 조직원은 ‘1등은 피하자’라고 말하는 현실이 이런 이유 때문에 발생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결국 은행 경영은 외부적 요인 외에도 내부적 요인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은행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금융의 비대면은 현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수만 명의 은행 직원들이 있다. 돈을 다루는 곳이나 사람이 일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은행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영은 필요하다. 은행의 내부 소통이나 복지 증대 등 직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오직 비대면 거래 확대에 따른 비용 감축만 고민한다면 불신과 갈등은 커진다. 그로 인한 보이지 않는 손실이 나타날 수 있다. 비용 감축과 직원 만족 증대를 동시에 하긴 어렵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 그래야 은행의 체질이 건강해진다. 노조도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해결 가능한 고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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