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픽트에겐 호기심이 주된 재료다. 할머니댁에서 보던 자개장, 이미 현대 생활과 멀어진 바로그 ‘자개’를 해체해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공예를 탐구하고 실험적인 과정을 거쳐 현대적인 오브제를 만들고자 하는 두 작가의 호기심이 그 시작이었다.

Photography-김선익

 

스튜디오 픽트 @fictstudio

From Craft To Industry의앞 글자를 따서 이름 붙인 스튜디오 픽트(FICT). 자개라는 소재가 본격적으로 ‘레트로’ 붐을 타기 전, 자개 원패의 아름다움을 감지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덜어내 현대적인 오브제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에 몰두했다. 또 한 번 새로운 소재를 찾아 모험을 해볼 생각이다.

 

스튜디오 픽트 특유의 감각으로 탄생시킨 파스텔 톤의 자개 트레이.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생활에 더없이 잘어울리는 트레이를 만들었다. /Photography 김선익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아이템 중에 자개장을 빼놓을수 없을 거다. 주로 할머니댁에 놀러 가면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화려하고 무거운 자개장. 혹은 과일을 깎아 내주시던 자개 상. 한때는 부의 상징이었고 언제부터인가 모든 집의 필수품이었으며 그러다 일순간 사라진 자개. 케케묵은 이자개를 다시 현대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곳은 스튜디오 픽트였다. 픽트(FICT)는 ‘From Craft To Industry’의 앞글자를 따온 것. 공예와 같은 전통적인 요소를 탐구하고 실험적인 산업 프로세스를 통해 현대적인 오브제를 만든다는 뜻을 담았다.

장혜경, 마정기 작가는 2015년 프로덕트 디자인 졸업 전시로 무얼 만들까 고민하다 자개를 발견하고 흥미를 느꼈다. 장혜경 작가는 “졸업 작품 준비하면서 여러 소재를 수집하던 중에 우연하게 가공되지 않은 자개 원패를 발견했다. 우리가 그동안 본 자개는 패턴이 화려한 동양화 느낌이었는데, 원패는 자개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자체로 우아하게 반짝이고 오묘한 색을 띤다. 여태 알고 있던 자개와 확실히 달랐다”고 첫인상을 소회했다.

여러 재료들을 실험하면서 자개와 레진을 짝지어 현대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것이 바로 ‘네이커 플러스(Nacre Plus)’ 프로젝트였다. 자개(Nacre)에 현대적 조형미와 제작 방식을 더해(Plus) ‘자개도 모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반, 브로치, 코스터, 트레이 등의 제품을 탄생시켰다.

“자개라는 소재 외에 모든 것을 해체하는 작업에 몰입했다. 처음엔 색을 바꾸고 형태를 깨보고 패턴을 없앴다. 소재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기에 덜어낼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덜어내 본연의 모습을 디자인하고자 했다.

요즘은 투명한 소재를 사용해 형태와 색깔까지 없앴다.”

마정기의 말이다.

네이커 플러스 프로젝트는 자개 오브제 브랜드가 되어 2년 정도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스튜디오 픽트가 크리스털 레진과 통자개패를 활용해 만든 티 테이블, 고운 파스텔 톤으로 뽑아낸 트레이 같은 오브제들을 취향 좋은 공간에서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됐다. 마정기는 “궁극적으로 자개를 사용하는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으면 한다. 자개가 현대 생활에도 쓸 만한 소재임을 알려주고, 파급력 있는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잠깐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자개 공예를 하는 장인들과 함께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번엔 색마저 빼버리는 시도를 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자개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선반들. /Photography 김선익

 

초반에는 워낙 작은 규모로 시작한 탓에 생활 소품 위주로 만들었지만 이제는 자개 원패를 활용한 테이블, 의자 같은 가구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제품 디자인을 공부한 탓에, 자개를 만나기 전까지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두 사람은 이제 다양한 소재를 만지고 결합하는 실험에 푹 빠져 있다.

이들에게 ‘레진 가루를 마셔가며 자개 작업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3D 프린트나 가공 기술은 미래로 갈수록 더좋아질 거다. 하지만 항상 미래만 존재할 순 없다. 이전 기술과 지금 기술의 융합으로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법이니까. 스튜디오 픽트는 과거의 소재를 다루지만 흔히 말하는 ‘레트로’ 트렌드에 편승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소재와 현대 기술을 융합해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는 것이 마정기의 답이다. 장혜경은 “우리는 감정을 건드리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 물건을 사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것, ‘예쁘다’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모두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일이다. 스튜디오 픽트가 그런 일을 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했다. 스튜디오 픽트는 매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데 시간을 쓴다. ‘모던한 자개 오브제’로 어느 정도 자리매김을 한지금에도 ‘2019년의 스튜디오 픽트는 어떤 모습일까’를 고민한다. 네이커 플러스 프로젝트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른 소재를 건드려보고 있는 중이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이제껏 자개를 탐험해왔듯이,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예정.

“우리 제품뿐 아니라 작가들의 공예 작품을 소비하는 시장의 파이가 커졌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카페 같은 상업 공간에 가면 그 트렌드를 직접 체감할 수 있다. 작가들의 작품이 일상생활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지.”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젊은 장인’이라고 불러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렇게 답했다. “지금 이 시대에 젊은 장인은 ‘오타쿠’라고 생각한다. 장르나 분야를 따지지 않고 좋아서 그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장인이라 해도 좋을 거 같다. 한가지에 미친 것을 넘어 세상의 중심이 그 일이 되는 것. 그렇게 몰두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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