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수첩] ‘광주형’ 운명 걸린 경차, 한국에서도 잘 나갈까
  • 윤시지 기자(sjy0724@sisajournal-e.com)
  • 승인 2019.02.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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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완성차 공장 첫 양산차는 경SUV 예고···시장 및 수급 구조 고려한 중장기 전략 모색해야

운전을 하면 사람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말을 최근 체감했다. 늦은 오후 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던 중 스파크 한 대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에 끼어들었다. 당시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했던 지인은 자기도 모르게 "경차 주제에···“로 시작하는 거친 말을 쏟아냈다. 평소 온화하고 인자했던 지인의 언행에 놀라기도 잠시, 국내서 경차의 위치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차는 장점이 많다. 주차장이 좁고 골목이 많은 한국에서 아담한 차체는 경제성을 발휘한다. 주차 및 세금 감면 혜택도 받는다. 그러나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시장에선 외면의 대상이다. 자동차가 운송수단을 넘어 개인의 경제적 지위를 대변한다는 인식은 도로 위를 달리는 작은 차체에 경시의 시선을 보탰다. 완성차 업체도 수익성이 낮은 경차 개발에 굼뜨다. 국내서 판매되는 내연기관 경차 모델은 기아차의 모닝, 레이, 한국GM 스파크 정도다. 현대차는 2002년 이후 국내에서 경차를 팔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형 일자리의 성패가 달린 광주 완성차 공장은 경차를 끌고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어렵사리 추진한 사업인만큼 성공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경기 침체일로를 걷는 지역 경제를 회복할 제2의, 제3의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숙제도 안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로 생산될 첫 차는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다. 현대차는 이 신차에 ‘경SUV’라는 차급 명칭을 붙였다. 승용차에 국한하지 않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로 신차를 개발해 새로운 시장 수요를 열겠다는 취지다. 광주형의 반값 임금을 앞세워 가격 경쟁력을 제고하고 현대차의 내수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명분도 갖췄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로 생산될 첫 차가 경형 SUV라는 점을 두고 논란은 여전하다. 신차가 'SUV'라는 마케팅 수식어를 대동한다고 해도,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시장에서 흥행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우선 경차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 지난 2012년 모닝, 레이, 스파크 등 경차는 국내서 20만대 넘게 팔렸지만 지난해 12만6000여대로 줄었다. 6년 전 내수 시장의 13%를 차지했던 경차는 지난해 7%로 점유율이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현대차 베뉴, 기아차 스토닉 등 1000cc의 경·소형차가 출시되면서 판매 간섭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광주시는 "핵심은 가격과 품질"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대차는 경SUV가 내수 출시 최우선 차종이므로, 현재 수출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아직 사업 초기 단계임을 감안해도 결국 내수 시장에서 절대량이 팔려야 한다는 소리다.

업계 전문가는 "고용 효과도 중요하지만 사업 존속이 전제돼야 하지 않겠나. 현재 광주형 일자리는 누가 봐도 5년 후가 걱정되는 사업"이라고 운을 뗀 뒤 "시장과 수급 구조를 충분히 고려한 중장기적 전략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사업 지속을 위해 해외 위탁 생산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현재 전반적인 자동차 생산량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감행하는 점은 불확실성을 더한다. 

납득할만한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으니 안팎에서 잡음이 발생할 명분만 줬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부터 “광주형 일자리로 만드는 경차는 내수, 수출 모두 사업성이 없다”며 사업 추진에 반대해왔다. 국내 완성차 공장 가동률이 낮고 70만여대의 유휴시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2년 뒤엔 경·소형차 시장까지 과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용 불안과 임금 하향평준화를 우려하는 노조는 이달 중 민주노총 총 파업과 연계해 강경투쟁을 공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전면으로 내건 ‘사회적 대타협’이란 명분은 오히려 현실화가 요원한 모양새가 됐다. 지역 노동계를 중심으로 양대 노총의 입장차는 평행선을 달리고, 지역 특혜 논란에 대한 반발 심리까지 얽혔다. 

광주형 일자리가 지역 경제 전반을 살릴 마중물이 되길 기원한다. 또 단발적 ‘실험’에 그치지 않고 후속 사업을 이끌어낼 ‘모델’이 되길 바란다. 처음부터 잘 되는 사업이 어딨겠냐마는, 우선 멀리 보고 오래 갈 방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중장기적 전략과 경쟁력이 필수적이다. 광주형이 지고 있는 무게추 양쪽엔 각각 ‘고용 창출’과 ‘제조업 부활’이란 가치가 매달려 있다. 그 무게추들이 수평을 그리길 바란다.

윤시지 기자
IT전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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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윤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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