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대·고영한 불구속 기소···임종헌도 혐의 추가 돼
상고법원 재판거래 및 비판세력 탄압 등 크게 4가지
사법부 내부 수사 마무리···행정부·입법부 수사 수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11일 오후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11일 오후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시절 사법부의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의혹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71년 역사상 최초로 형사재판을 받는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 기록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1일 오후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미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판사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법관 인사 불이익 조치 관련 직권남용 혐의 등을 추가했다.

공소장에 기재된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 사실은 총 47개에 달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 혐의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상고법원 추진과정에서 행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거래, 대내외적 비판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직권남용 등이 대표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을 재판에 넘긴 검찰은 향후 사법농단 과정에 연루된 것으로 조사된 법관 100여명 중 사법처리 대상을 추려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양승태 사법부에 재판 관련 청탁을 한 것으로 조사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에 대한 수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의 의원, 홍일표 자유한국당의 의원 등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도 이어질 것으로 알려졌다.

◇ 상고법원 추진 등 행정부 상대 이익 도모…강제징용 손배사건 개입 등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 사실 중 상당수는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을 강화하고 이익을 도모하는 데 집중돼 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외교부의 지원을 받아낼 목적으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재판에 개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찰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부는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대일본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외교부 입장을 강제징용 소송에 반영하는 계획을 세웠다.

청와대와 외교부의 입장을 재판에 반영하는 방법으로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부 조직 이익을 위해 재판지연 등의 계획을 세웠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계획과 실행과정에 적극 개입했다고 판단하고 총 8가지 범죄사실로 위법 부당지시(직권남용) 및 법원행정처의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를 적용했다.

양승태 사법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재항고 사건에도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청와대가 전교조 관련 사건에서 효력정지 인용결정을 내린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자 재판개입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양승태 사법부는 2014년 12월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청와대 및 사법부 양측 모두 윈윈(win-win) 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장관의 전교조 효력정지 재항고 신청을 인용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상고법원 도입 등에 청와대의 협조를 요구하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승태 사법부는 박근혜 정부의 부담이었던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에도 개입을 시도하고 실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이 사건 재판결과에 대해 청와대와 여권 등의 동향 파악과 상고심 재판의 신속 진행, 청와대에 대한 이니셔티브 확보를 위한 활용 등 방안을 검토한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또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 입장을 보였던 판사 출신인 서기호 당시 국회의원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 의원이 제기한 소송을 원고 패소로 종결하도록 요구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 밖에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한 정보 및 동향 수집, 헌법재판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기사 대필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동훈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동훈

◇ 비판세력 탄압…독립된 재판 억압하고 변호사 단체 회장 압박

양승태 사법부는 내외부에서 발생한 비판도 탄압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을 비판하거나 사법행정에 부담을 준 행동을 한 법관들에 대해 문책성 인사조치를 할 목적으로,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등을 만들어 문책성 인사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내부 법관 모임들의 활동을 저지하고 이들을 와해시키려는 목적의 문건을 작성했으며, 법관들이 법원 외부 게시판에서 사법행정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하자 카페 자체를 폐쇄시킬 계획도 세웠다.

양승태 사법부의 탄압은 내부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대한변호사협회 및 지방변호사회 회장들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한변협 산하 법률구조재단지원 감축, 대한변협 광고 게재 축소, 변호사평가제 TFT 구성, 간담회 미개최 등 방안 추진·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 부당한 조직보호 및 공보관실 운영이 불법 편성 등

양승태 사법부는 조직보호라는 명목아래 법관의 비위를 감추거나 검찰의 합법적인 수사를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부산고등법원 판사의 향응 수수 비위를 확인하고도 징계 등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 사건이 언론에 밝혀질까 재판지연 등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수사됐다.

양 전 대법관 등은 ‘정운호 게이트’ ‘서울서부지법 집행관사무소 사무원 비리’ ‘법관비리’ 수사 등에 검찰의 수사가 확대되는 것으로 막기 위해 수사기밀을 수집하고 검찰총장을 압박하기 위한 방안 등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급 법원장, 법원행정처 고위간부에게 격려금으로 지급한 현금을 공보관실 운영비로 불법 편성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 허위 입력, 지급결의서·수령확인증 허위 작성 등을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 사법부 내 수사 마무리…관련 법관 및 행정부·입법부 추가 수사 전망

양 전 대법원장 등 핵심 피의자가 재판에 넘겨지면서 사법부 내부에 대한 검찰 수사는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양 전 대법관 등의 지시를 이행한 각 법관들에 대한 형사처분이 과제로 남아있다. 검찰은 약 100명의 법관들을 수사 선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조만간 사법처리 대상을 추려 재판에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최고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재판에 넘겨진 만큼 사법처리 범위가 최소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사법부 수사가 마무리된 뒤에는 행정부 및 입법부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양승태 사법부에 재판 관련 청탁을 한 것으로 조사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이 수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의 의원, 홍일표 자유한국당의 의원 등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재판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전·현직 의원은 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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