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없이 계약도 책임도 없는 암호화폐 자금모집 활개

이미지 = 김태길 디자이너
이미지 = 김태길 디자이너

 

사업을 시작하는 데 운영자금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사업아이디어와 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금이 없으면 아이디어 테스트조차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운영자금은 생각으로만 존재하는 비즈니스를 구체화하고 작동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사람에 비유하면 혈액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모아 놓은 자금이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운영자금 확보는 어려운 과제 중 하나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표의 개인 신용을 이용하기도 한다. 회사가 어려울 경우 대표이사 자신이 모든 것을 변제하겠다는 부담을 안고서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미래 회사가 성장할 것을 전제로 지분에 대한 투자를 받는 방법도 존재하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 입장에서도 투자를 선뜻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투자 목적으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ICO, 리버스 ICO, IEO 등의 단어를 한번쯤은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초창기에 블록체인 프로젝트 투자자금을 모금했던 것이 ICO이고, 이후 고유 사업을 하던 기업들이 자신들의 사업에 블록체인 관련 아이템을 추가하기 위해 자금을 모집한 것이 리버스 ICO였다.

또 투자자들의 투자금액 유동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해 거래를 시작함과 동시에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암호화폐를 처분하여 운영자금을 모집하는 방식을 IEO라고 부른다.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설계와 운영을 위해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하는 행위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암호화폐의 시세하락과 관심도 이탈로 산업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자금 모집을 계속해서 진행한 이유는 자금 조달의 용이성 때문이다. 관련 판례나 법규, 유권해석등이 나오지 않아 ICO나 리버스 ICO, IEO등의 방법으로 모금을 진행하면 모금 형태 및 보상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모금을 진행할 수 있었다. 계약서 하나 없이 모금 공지와 막연한 방향 제시만으로 쉽게 모금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은 자금을 모집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모금은 모럴 해저드를 발생시킬 여지가 다분하다. 완성된 제품을 보고 소비자가 검수후에 돈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을 만들어 주기도 전에 돈을 받고 물건을 만들지 않을 경우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초창기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투자성공사례를 보고 ICO, 리버스 ICO, IEO등의 모금 방식에 투자자들은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그러나 시장의 기축이라고 여겨지는 일부 암호화폐의 시세들이 크게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일부 프로젝트의 경우 모금을 완료한 뒤에 홈페이지와 SNS커뮤니티 채널 등을 폐쇄하고 잠적하거나, 모금이 완료된 후 모금 홍보당시 로드맵 등으로 제시했던 계획일정을 지키지 않고 활발하던 개발이 전혀 진행되지 않는 일도 발생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암호화폐를 통한 모금은 별다른 규제, 제도가 정비되지 않아 보고의 의무, 자금 집행 내역 공개에 대한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투자자 보호차원에서 ICO와 같은 모금행위를 전면 금지했으나, 일각에서는 신사업에 대한 과잉 규제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ICO금지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이 있어 이에 대한 심리가 진행중으로 규제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지여부를 떠나서 규제와 관련해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돼야 할 점은 현 상황을 고려해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올바른 기업과 산업의 성장은 운영의 투명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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