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파로 통하던 엄마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원치 않았던 팔랑귀로 변신하게 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 논술 바람이 불었다. 논술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글을 쓰는 데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내 귀에 팔랑팔랑 바람이 일었다.

삼삼오오 논술 학원에 등록하는 주위의 아이들을 보며 흔들리지 않겠다던 나의 철학이 매일 조금씩 무너졌다. 이러다가 우리 애만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불안해졌다. 결국 어느 날 퇴근길, 유명하다는 논술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저희 학원은 다른 학원들과 가르치는 방식이 다릅니다.

무조건 책상에 앉혀 책을 읽히거나 글을 쓰게 하지 않아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글감을 떠올리게 하고 느끼게 하죠. 직접 느끼고 체험한 뒤그것을 글로 옮기게 합니다.”

자신감에 찬 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그거야말로 엄마인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게도 소중한 방법만 주워듣고 돌아와 그날로 차를 버렸다. 대신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마트에 가면서, 은행에 가면서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차 타지 않고 엄마 손을 잡으니까 뭐가 좋아?”

엄마의 질문에 아이들은 생각한다. 생각을 거듭하면 결국 글감이 튀어나온다. “엄마 손이 내 손보다 따뜻해요.” “차 안은 답답한데 하늘이 보여요.” “동생이 걸을 때 엉덩이가 씰룩거려요.”

“보세요! 저 가게가 새로 생겼어요.”

아이들은 주위를 관찰하고 흥미로운 대답을 이어간다.

관찰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결국 글감이 되고 글로 풀려 나온다. 생각이 우선되어야 논점이 생길 것이며 글로 풀어낼 것 아닌가. 출장이 잡힌 어느 날 아이들이 다가와 조른다.

“엄마! 엄마! 저도 출장 따라가면 안 돼요?”

나는 태연스레 대답한다.

“되고 말고. 이유만 있으면 당연히 데려가지. 왜 엄마랑 같이 가야 하는지 일곱 가지만 써서 엄마 가방에 넣어줄래? 회사에 가서 읽어보고 데려가야 한다면 꼭데려갈게.”

어차피 데려가지 않을 심산이지만, 아이들은 엄마를 설득하기 위한 이유를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한다. 생각은 글을 만드는 기초 작업이다. 먼저 생각해야 한다. 어린 시절, 엄마가 외출하면서 종종 당부하셨다.

“엄마 오늘 늦어. 동생하고 저녁 좀 챙겨 먹어.”

저녁이 되면 나는 일단 주방에 들어가 ‘생각’이란 걸했다. 엄마 말씀대로 동생하고 저녁을 챙겨 먹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차려서 해결해야 할지 ‘생각’을 해야 했다.

냉장고를 열고 찬장을 열며 뭘 꺼낼지 궁리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아이들에게 궁리하거나 생각할 틈을 주지 않은 채 지나치게 구체적인 지시를 한다.

“엄마 오늘 늦어. 동생하고 저녁 챙겨 먹어. 냉장고 열면 두 번째 칸에 초록색 사각 통이 하나 있을 거야.

통 뚜껑을 오른쪽으로 비틀어 열면 반찬이 있거든.

두 젓가락만 덜어서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만 돌려.

데워지면 물방울무늬 접시 있지? 한 젓가락씩 거기에 담아 먹고 부족하면 노란색 통을 찾아봐. 거기에 남은 게있을 거야.”

무엇을 찾아야 할지 생각할 틈도 없이 엄마의 지시는 물샐틈없이 완벽하다. 지시에 익숙하다 보니 요즘 아이들은 ‘시키는 것’(?)만 잘한다.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관점을 논하는 ‘논술’이 아니라 배운 대로 외워 써내기 바쁜 ‘논술’이 우리 주위에 흔하다. 논술도 암기로 하는 슬픈 사회. 지시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자. 생활 속에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기회는 많다.

 

글쓴이 유정임

<이문세의 별밤> 작가 출신으로 현재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으로 근무 중. 두 아들을 카이스트와 서울대에 진학시킨 워킹맘으로 <상위 1프로 워킹맘>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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