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출신’ 정재찬·신영선·김학현 유죄···‘외부출신’ 김동수·노대래 무죄
재판부, ‘퇴직자 일자리 만들기’ 관행 인지 여부 주목해 판단

막강한 규제 권한을 악용해 대기업에 퇴직 간부들을 채용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기소된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막강한 규제 권한을 악용해 대기업에 퇴직 간부들을 채용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기소된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들이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공정위 간부 중 내부출신들이 대거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반면 외부출신 간부들은 대기업을 압박해 공직위 퇴직자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관행’을 상세히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는 31일 업무방해와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전현직 공정위 간부 12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정재찬 전 위원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신영선 전 부위원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보석이 취소돼 재수감됐다. 반면 김동수·노대래 전 위원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유무죄 판단은 이들의 ‘출신성분’에 따라 갈렸다.

재판부는 22년간 공정위에 근무한 정재찬 전 위원장에 대해 “공정위는 조직 규모도 크지 않아 피고인이 내부 관행을 잘 알 것이고 그러한 진술도 있다”면서 “기존 업무 경험에 비춰보면 내부 관행을 모두 알고서 이를 승인하는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20년 남짓 공정위에 근무한 신영선 전 부위원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내부 사정을 잘 알 수밖에 없던 위치였고, 운영지원과장이 ‘취업 현황을 이미 신 전 부위원장에게 설명했고, 김 전 부위원장과 함께 공정위의 정형화된 관행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며 “이런 점에 비춰 신 전 부위원장도 퇴직자 취업에 대해 공정위가 기업에 요구한 것을 알고 승인한 걸로 판단된다”고 판단했다.

김학현 전 부위원장에 대해 재판부는 “기업에 직접 연락하는 등 전반적이고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이용해 자신의 딸을 취업시켰다”고 지적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1997년~2005년, 2008년~2009년, 20014년~2017년 공정위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외부출신’인 김동수·노대래 전 위원장에게는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라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김동수 전 위원장에 대해 “위원장 재직 당시 5명 퇴직자가 기업에 취업해 공정위 차원의 취업을 지시했다는 여지가 있다”면서도 “김 전 위원장은 외부 출신 인사로 내부 관행이나 조직 내 구성원 면면을 알기 어려운 위치에 있고, 공정위 관계자 진술에 따라 인적네트워크나 유대관계 등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내부출신들과 차이가 있다”고 결론냈다.

노대래 전 위원장에 대해서도 “김 전 위원장과 유사하게 외부출신 인사여서 상세하게 알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며 “위원장으로 재직한 1년 8개월동안 퇴직자 2명만 기업에 취업했고, 당시 과장이 노 전 위원장에 보고한 사례가 없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공정위에 재직하면서 퇴직 예정인 간부들을 채용하도록 민간기업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기간 16곳의 기업이 강요에 못 이겨 공정위 간부 18명을 채용했고, 임금으로 총 76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공정위는 중앙행정기관으로 공정한 시장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대기업 등 업무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이 광범위하고 대기업에서 공정위 관련 현안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 관계자들도 ‘하는 수 없이 공직자를 채용하게 됐다’고 진술했고, 대부분 공정위가 먼저 기업에 취업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정위의 위력이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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