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초, 한산했던 핀란드 반타 공항이 붐비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박람회 ‘슬러시(Slush)’가 열리기 때문이다.

클럽을 연상시키는 슬러시의 스테이지.
클럽을 연상시키는 슬러시의 스테이지.

시원한 여름을 만끽할 수 있는 여름 성수기도 아닌데 반타 공항이 분주했던 이유는 스타트업 박람회 슬러시 때문이다. 스타트업 2,600개, 투자자 1,600명, 미디어 600곳 등 총 2만여 명의 사람들이 슬러시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눈이 될 듯 말 듯한 축축한 비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내리고 있지만 슬러시를 즐기러 온 이들의 후끈한 열기는 헬싱키를 달궈놓기에 충분했다.

 

한국 뷰티 기업도 출전했다

1993년생으로 알토대학교에 재학 중인 안드레아스 사아리와 1990년생인 알렉산더 피흐라이넨이 공동 기획하고, 대학생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이 박람회에는 청년들의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박람회보다는 축제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지하에 위치한 행사장에는 자욱하게 깔린 스모그와 현란한 네온사인, 심장을 바운스하게 만드는 신나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이곳에서는 힙한 DJ들이 디제잉을 하고, 방문자들은 마치 클럽에 온듯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즐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자원봉사자.<br>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자원봉사자.

클럽처럼 신명 나게 꾸며놓은 행사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Can I help you(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자원봉사단을 만날 수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2,400여 명의 자원봉사단이다. 이들은 스스로 슬러시의 주역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한국인 최수연 씨 역시 그중 하나다. 그녀는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박람회에 참여했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스펙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즐기려는 마음이 우선이다.

 

청춘들의 열정에 대한 신뢰로 국가적인 행사로 거듭난 슬러시<br>
청춘들의 열정에 대한 신뢰로 국가적인 행사로 거듭난 슬러시

슬러시의 성공 비결은 핀란드 사회를 관통하는 가치 신뢰에 있다. 기성세대와 정부가 청년의 도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선배 기업인들은 청년들의 열정을 믿고 기꺼이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국가는 창업을 위한 지원 시스템을 운영한다. 핀란드 사회는 가진 것없는 청년들이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일까? 핀란드 청년들과 대화를 하 다보면 창업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핀란드 젊은이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에서 사회적 가치가 창출된다고 믿고 있다. 어른들은 그런 청춘들에게 “비 브레이브(Be Brave)!”라고 외치며 전보다 더 대담해지라고 격려한다.

 

한국의 최수연 씨는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자원봉사에 나섰다.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에 뿌듯함을 느끼는 청춘, 젊은이에게 대담해지라고 하는 기성세대, 이 관계를 뒷받침하는 국가 정책.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핀란드의 창업 생태계는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고 그중심에 슬러시가 있다. 슬러시는 애프터 파티를 끝으로 화려한 막을 내렸다. 슬러시가 박람회가 아닌 축제처럼 여겨지는 것은 비단 클럽처럼 꾸며놓은 외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창업가들이 서로 노고를 살펴보고 응원하면서 스트레스를 없애고, 성공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히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과 공간이 바로 슬러시다. 청춘의 찬란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곳이야말로 축제의 장이다

 

글쓴이 류선정 한국-핀란드 교육연구센터 소장으로 헬싱키 현지에서 교육 연수를 기획 및진행하고 있다. 핀란드 교육 연구를 통해 한국 교육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핀란드에 정착했다.

 

 

사진 류선정, 슬러시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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