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본연의 의미 살릴 수 있는 개발방식 고민해야

우선 필자는 을지면옥이나 을지로 재개발 반대와 관련된 어떤 단체와도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힌다. 을지면옥 냉면을 즐기긴 하지만 그저 가끔 가서 먹는 정도일 뿐이며, 그곳 사장과는 계산을 주고받는 것 외엔 어떤 대화도 해 본적이 없다. 또 개발 반대론자도 아니며 여전히 서울시가 개발을 해야 할 곳 투성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을지면옥과 그 일대를 무조건 밀어버리고 서울시가 도시재생을 논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단순히 을지면옥이 오래된 맛집이기 때문이 아니다. 서울시가 도시와 공간을 보는 관점이 여전히 70년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재개발이라는 단어대신 도시재생이라는 부드러운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도시재생은 여러 가지 복잡한 정의가 있지만 쉽게 말해서 해당 도시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낙후된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되살려주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낙후된 것이 곧 정체성의 일부인 을지로와 같은 곳을 재생시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싹 다 밀고 새롭게 만드는 게 도시재생인지, 그냥 두는 것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 판단은 고도의 센스를 요한다. 그냥 밀어버리고 다시 화려하게 바꾸는 것은 그 센스를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도시재생과 단순 재개발은 한 끗 차이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백년 넘게 장사를 해온 식당들을 볼 수 있다. 그런 곳은 이미 그 장소도 맛의 요소가 돼버린 곳이다. 여행객들이 단순히 그 음식 자체만을 먹으려고 줄을 서고 예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 그 음식을 먹고 분위기를 즐기며 나아가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래된 곳은 문화재 대접 받을 수준이 아니면 무조건 새롭게 바꾸는 것이 좋다는 식의 개발방식 때문이다.

감상에 빠지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내다보자는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높은 건물만 보면 눈이 돌아가고 좋아보이던 시절. 그런데 이제 달라졌다. 여전히 대형쇼핑몰엔 사람이 몰리지만, 그런 곳들만 찾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원한다. 20대들 사이에서 을지로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방송촬영 덕을 본 것도 있지만 허름한 공간에서 품고 있는 분위기와 정체성이 주는 특별함이 있어 찾는 것이다. 그냥 소비자가, 시장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이다.

외국인들도 무작정 화려한 건물이나 유적지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스토리가 담겨있고 특징 있는 곳을 가보고 싶어 한다. 경복궁이나 남대문도 훌륭하다. 허나 그 역사와 스토리라는 것이 꼭 수 백 년 전 이야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여행객들이 태국에 가면 오래된 사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카오산로드를 더 많이 간다. 사실 가도 별건 없지만 그곳이 여행자들의 거리라며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한다. 그 복잡하고 정신없는 카오산로드를 밀어버리고 깨끗하게 가게정비를 한다면 그곳에 갈 이유가 없어진다.

물론 을지면옥을 비롯한 그 일대는 카오산로드와는 사정이 다르다. 죽어있는 곳들이 많아 생명력을 넣어줄 필요가 있다. 여행자들의 거리도 아니고 장사도 을지면옥 등 몇몇 잘되는 집들만 잘된다. 조치가 필요한 것은 맞다. 허나 ‘일단 밀고 다시 깔자’는 식의 단순한 생각은 도시재생을 논하는 서울시와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을지로 개발 문제를 그저 ‘개발이냐 생존권 보존이냐’의 프레임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을지로 일대 사람들도 낙후된 채로 마냥 둘 순 없으니 어떤 방식의 개발이 더 효과적이고 취지에 맞는지를 고민하고 외부의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을지로에도 분명 스토리가 있고 경제적, 문화적인 잠재력이 있다. 그것을 폭발시킬 포인트를 찾는 것은 서울시의 몫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흘러 들어오고 돈도 함께 돈다. 이번 을지면옥 논란이 박원순 시장에게 도시재생의 의미에 대해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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