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IPO에 기약 없어진 국내 증시 상장···헛심만 쓴 꼴
아람코 취득 지분 만큼 사라지는 공모물량···수수료 축소 불가피

현대오일뱅크가 프리IPO 방식으로 아람코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게 되면서 국내 상장 절차를 추진했던 상장주관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거래소 상장예비심사를 재청구해야 한다는 점 뿐만 아니라 수수료 산정의 핵심인 공모물량도 줄어든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헛심만 썼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대오일뱅크가 프리IPO 방식으로 아람코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게 되면서 국내 상장 절차를 추진했던 상장주관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거래소 상장예비심사를 재청구해야 한다는 점 뿐만 아니라 수수료 산정의 핵심인 공모물량도 줄어든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헛심만 썼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대오일뱅크가 프리IPO 방식으로 아람코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게 되면서 8년째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학수고대해 온 상장주관사들이 입맛만 다시고 있다. 거래소 상장예비심사 재청구 시점이 기약없을 뿐만 아니라 수수료 산정의 핵심인 공모물량도 줄어든다는 점에서 헛심만 쓴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의 모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일부를 프리IPO 형식으로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에 매각하기로 했다. 현대오일뱅크 입장에서는 지지부진해진 국내 상장 문제를 타계할 방안을 찾았지만 현대오일뱅크 상장주관사단은 울상이다. 통상 중간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 국내 업계 관행상 지난해 상장예비심사 통과시까지 진행했던 노력들은 헛심만 쓴 꼴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오일뱅크는 장기화된 조선업황 불황으로 인한 현대중공업 그룹의 재무개선을 위해 상장을 추진했다. 현대오일뱅크는지난 2018년 1월 NH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 등을 대표주관사로 미래에셋대우, 신한금융투자,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BOA메릴린치 등을 공동주관사로 선정했다. 이어 지난해 8월 거래소 상장예비심사에서 승인을 받은 상태다. 그러나 이번 프리IPO로 자금조달에 서두를 필요가 없어지면서 이번 승인 효력이 유지되는 2월까지는 물론 향후 상장 시점에 기약이 없어졌다. 

현대오일뱅크가 상장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10월경 상장주관사를 선정하고 2012년 4월 거래소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는 단계까지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이란 제재 속에 선박 보험 문제가 튀어나오면서 원유공급 차질 우려 속에 적정가를 받기 힘들다는 예상이 커졌다. 동시에 이미 상장된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등 동종 업체들의 주가 부진 역시 발목을 잡았다. 

◇2012년에도 상장 무산···길어지는 기다림

결국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2년 6월 상장예심을 자진 철회했다. 지난해 현대오일뱅크가 상장을 추진하던 시기와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예상치 못한 금융당국의 회계감리 이슈와 시장 침체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 현대오일뱅크 측에서 갑작스럽게 상장을 철회했다면 추후 수수료라도 올려받을 수 있겠지만 해당사항이 없다.

상장이 무산될 경우, 수수료를 받을 수 없는 국내 IB업계 관행상 상장 주관사들 역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 IB업계에서는 이런 경우 통상 추후 상장시 주관사를 맡는 것 정도로 손실을 만회한다. 2011년 현대오일뱅크의 상장 추진 당시에도 상장 대표주관사는 NH투자증권(당시 우리투자증권)이 맡았고 하나금융투자는 공동주관사로 참여했다. NH투자증권 입장에서는 단순계산으로는 8년 가량 끌어온 딜이 다시 한번 연기된 셈이다.

NH투자증권은 국내 IB 가운데 IPO 분야에서는 첫손가락에 꼽히는 하우스다. 여전히 IPO분야에서는 명가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지난해 상장실적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수익성에 타격을 입었다. 블룸버그 리그테이블을 기준으로 NH투자증권이 담당한 IPO는 10건으로 국내 시장 4위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IPO 시장에서 최대어로 손꼽히던 현대오일뱅크 상장이 불발되면서 공모금액에서도 부실한 실적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아람코 지분 매각은 프리IPO기 때문에 현대오일뱅크가 다시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고 결국에는 상장하겠다는 점 정도가 주관사들에게는 위안이다. 그러나 기약은 없다. 아람코가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를 10조원으로 산정하고 투자하는 만큼 이 가격 이하로 상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바꿔 말하면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가 10조원 이상 평가받을 수 있어야 상장을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모물량 축소 불가피···주관사 수수료에 직격탄

단순히 상장 시점만 늦어진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더 큰 문제는 프리IPO 이후에 공모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내 IB업계에서는 상장 수수료를 공모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하는데,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시 평균 수수료는 140bp 수준이다. 아람코가 이번 프리IPO로 지분을 얼마나 가져갈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공모물량 축소는 곧 상장 성사후 받을 수수료 역시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람코는 현재 에쓰오일의 최대주주기 때문에 현대오일뱅크 지분 20% 이상 보유시 두 회사가 공정거래법상 관계기업이 된다. 따라서 아람코가 인수할 수 있는 현대오일뱅크 지분은 최대 19.9%수준까지라는 점을 기반으로 세부 내용을 조율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이번 거래로 1조8000억원 가량을 확보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람코 취득 지분이 예상 최대치인 1조8000억원 수준으로 확정된다면 증권사들은 해당 물량 만큼 공모를 진행할 필요가 없어진다. 수수료를 얼마나 지급할지는 현대오일뱅크가 결정할 일이지만 이미 박해질 만큼 박해진 시장 상황에서 파격적인 수수료를 지급할 가능성은 낮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평균 수수료인 140bp가 기준이 된다면 결과적으로 252억원 가량의 수수료가 사라지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가 이미 한차례 상장예비심사를 철회했고, 이번에도 승인 기한 만료로 다시 한번 상장이 무산된다상장이 지연되는 것만으로도 주관사들의 부담이 커지는데 공모물량까지 줄어 들 수밖에 없어 일부에서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안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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