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은 극장가의 대목이다. 특히 한국영화에 그렇다. 대개는 3, 4개 한국영화가 개봉된다. 우리 고유 명절 분위기가 미국영화보단 한국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설 극장가는 좀 다르다. 새 한국영화가 달랑 ‘극한직업’과 ‘뺑반’ 두 편이다. 대작도 아니다. 스타급 연기자도 거의 없고 100억, 200억 이상의 큰 돈을 들이지도 않았다. 예년 같으면 연말 극장가에 살아남은 화제작 1, 2편 정도가 이월해 상영했을 텐데 올해는 이 마저도 없다. 400만명 이상은 봐줘야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마약왕’은 186만명, 370만명이 손익분기점인 ‘PMC: 더 벙커’와 ‘스윙키즈’는 각각 166만명, 146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쳐 일치감치 간판을 내렸기 때문이다. 쪽박이다. 시대물 ‘말모이’와 화제작 ‘보헤미안 랩소디’만이 천만 관객 동원 고지를 향해 상영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극한직업'과 '뺑반'은 둘 다 코미디와 액션을 섞은 수사물이다. ‘극한직업’은 치킨집을 위장 창업한 5명의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이 너무 잘 팔리면서 벌어지는 코미디고, ‘뺑반’ 역시 뺑소니 차량을 좇는 좌충우돌 형사들의 이야기로 범죄, 액션 영화다. 이들 영화는 코미디에 액션이 적당히 곁들여진, 설 명절에 온 가족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 상업영화다. 이중 이병헌 감독의 영화 ‘극한직업’은 29일 현재 350만명이 봤다. 순제작비가 65억원에, 손익분기점은 200만명이니 벌써부터 대박조짐이 보인다. 이런 속도면 설 연휴 전에 500만명이 예상된다. 제작비 대비 수익률이 높아 가성비가 좋은 콘텐츠다.

국내 영화산업 규모는 2억관객, 2조시장 정도다. 이 사이즈면 세계 10위안에 든다. 개봉을 앞둔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홍보를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이유다.

국내 시장은 대략 설 명절, 여름방학, 추석명절, 연말 시즌등 4개 대목으로 나누어 진다. 투자, 배급 입장에서 어느 대목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2억명-2조원 규모인 ‘둘둘’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양상이다. 지난해 추석 대목을 시작으로 연말 대목까지 송강호, 하정우 등 특 A급 스타를 내세운 2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의 줄줄이 크게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엄살 같진 않다.

대개의 콘텐츠 산업이 그렇듯이 영화 역시 리스크가 높은 산업이다. 원 소스 멀티 유스 (one source multi-use)도 성공한 콘텐츠에 한한다. 말이 좋아 osmu이지 망하면 쪽박이다. 이럴 경우 제작자는 물론 투자 및 배급자들에게도 치명적이다. 주식시장으로도 연동돼 주가가 곤두박질친다. 실상 제작자들은 영화가 손익분기점만은 넘기를 학수고대한다. 차기작을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시쳇말로 영화판에서 계속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설 대목엔 ‘극한직업’의 치킨 파는 형사들이 2억관객-2조원의 ‘둘둘’ 영화시장을 지키는 ‘독수리 5형제’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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