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사실상 강행···비용 증가 꺼리고 손쉬운 구조조정 위해” 반발
자회사 운영모델안, 저임금·원청 사용자 책임 회피 구조 여전 지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오전 대전광역시 서구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의 꿈, 4차산업혁명 특별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오전 대전광역시 서구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의 꿈, 4차산업혁명 특별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공공기관의 정규직화 자회사 방식에 대한 하청 노동자들 반발에도 강행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해 말 공공기관들에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 및 운영모델안’을 내려보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전환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지만 노동계는 자회사 방식을 현실화하는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내려보낸 자회사 운영모델안도 저임금과 원청 책임 회피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온다. 자회사가 가능한 기준에 대한 대안도 없어 현장 혼란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여전하다. 여러 공공기관들은 자회사를 만들어 정규직화 하는 과정에서 원청이 직접 고용하라는 하청 노동자들과 갈등이 깊다.

노동자들은 자회사 방식이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지 못하고 원청이 산재 사고나 임금 등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발전소에서는 위험 업무 외주화 확대로 하청 노동자들이 잇따라 죽었다. 발전 부문 하청 노동자들은 안전한 일터가 되기 위해서는 원청이 직접고용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31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 및 운영 모델안’을 공공기관 등에 내려 보냈다. 공공기관 정규직화 자회사 방식에 대한 하청 노동자들 반발에도 강행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이 방안에는 자회사 노동자들의 고용 안전성 강화, 합리적 임금 및 승진 체계, 교육 훈련 등 전문성 강화, 자회사의 산업안전 등 모회사 책임 강화 노력 등이 담겼다.

그러나 하청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방안이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효과가 사실상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자회사 1년 예산을 책정하지만 자회사 노동자들은 여전히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청에게 자회사 노동자들의 산재 사고 책임도 직접적으로 묻기에 한계가 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정부가 지난해말 내놓은 바람직한 자회사 방안은 하청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공부문 정규직화 자회사 방식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라며 “자회사라고 하더라도 독립적으로 자기 사업을 할 수 없고 원청의 산업에 편입돼 있기에 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원청에 좌우된다. 자회사 자체적으로 임금 및 승진체계를 잘 만들더라도 원청과 교섭이 이뤄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예를 들어 KT의 콜센터 등 자회사들은 대부분 정규직이다. 그러나 이 자회사 노동자 임금은 평균 2000만원을 조금 넘는다”며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 코레일테크는 노동조건이 나빠 기술력 있는 사람들이 계속 빠져 나가 정비에 문제가 생길 정도다”고 했다.

실제로 우정사업본부와 매년 위탁용역 계약을 맺는 우체국시설관리단의 현장 노동자 2500여명도 최저임금에 머물러있다. 우체국시설관리단은 공공부문 정규직화 추진 계획에서 자회사로 분류돼 직접고용 대상에서 빠졌다. 2018년 기준 우체국시설관리단 현장 노동자 2468명 가운데 2000여명은 최저시급 7530원을 받았다. 나머지 470여명도 임금 수준이 열악하다. 최저시급을 받는 우체국시설관리단 노동자 비율은 지난해 80%로 2017년 72%보다 늘었다.

박정석 공공운수노조 우체국시설관리단지부장은 “우정사업본부에서 청사경비에 지급한 금액의 60% 정도만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나머지는 중간 단계인 우체국시설관리단지에서 각종 일반관리비, 이윤, 부가가치세로 빠진다”며 “이에 노동자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는 자회사 방식에서도 이전의 하청업체 구조와 같이 중간 착취나 비용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회사 방식을 하면 협력업체가 가져갔던 이윤을 처우개선비로 쓰겠다고 하지만 자회사를 만드는 데도 비용이 든다”며 “하청업체 구조의 중간착취가 자회사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 및 운영모델안은 현장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도 빠졌다는 지적이다. 공공부문에서 원청의 직접고용이 필요한 부분과 자회사가 가능한 부분에 대한 기준을 담지 않았다. 공공기관들이 각자 판단으로 자회사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에 최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발전 정비 업무도 자회사 방식이 가능한 상황이다. 발전 정비 업무는 정부가 2008년 전기 사업의 ‘필수 유지 업무’로 지정한 바 있다. 필수 유지 업무란 필수공익사업의 업무 중 그 업무가 정지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공중의 생명·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를 말한다. 따라서 필수 유지 업무에 대해 쟁의행위마저 제한했다.

남우근 비정규노동센터 연구원은 “정부의 자회사 모델안은 자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자회사를 설립한 37개 기관은 자회사로 할 만한 곳들이 아니었다.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남 연구원은 “자회사 기준은 노동조건을 포함해 운영상 경영 효율성도 고려해야 한다. 자회사가 경영 운용 효율성상 필요한지 검토돼야 한다”며 “청소나 경비 부문을 자회사로 만드는 것은 직고용 회피일 뿐이다. 이런 곳들은 원청의 하나의 사업 부서로 운용될 뿐이다. 김용균씨 발전 정비 업무는 정비 전문성 보다는 단순 인력 공급 형태로 운영됐다. 당연히 직접 고용해서 운영해야 할 분야다”고 말했다.

김혜진 활동가는 “발전 정비 업무는 필수 유지 업무로 지정됐다. 이는 발전소가 어떤 경우에도 멈추면 안된다는 의미로 파업도 못하게 했다”며 “그런데도 외주화가 가능하다고 한 것은 맞지 않다. 발전소가 직접 운영해야 할 부분이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화 자회사 방식을 강행하는 것은 비용을 줄이고 손 쉬운 인력 구조조정을 위해서라는 의견이 나왔다.

김 활동가는 “원청이 직접 고용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더 편성해야 하는데 정부가 예산을 늘릴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며 “또 정부의 외주화에 대한 집착은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구조조정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원청 직고용 시 인력 줄이기나 재배치 등 구조조정이 어렵다. 그러나 자회사는 원청이 사실상 지배하기에 업무조정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가 자회사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공공 부문에서 원청 직고용하면 다른 직종에 대한 호봉제 등 임금에 대한 방침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자회사 모델이 불충분하지만 그전보다 낫다는 이유로 모든 공공기관이 직고용은 안하고 자회사 방식을 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경영평가제에서 인건비 항목이 핵심이기에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원청 직고용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이걸 알면서도 자회사 방식을 추진했다. 공공부문 인건비 추가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좋은 일은 한다는 선심 방식을 채택한 것이 자회사 조장 방식이다”고 했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공공부문 정규직화 1단계 전환 대상 중 하나인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 334개소의 10%인 33개소에서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진행했거나 추진 중이었다. 그 규모는 3만2514명이었다. 중앙부처 산하 전체 공공기관의 파견·용역 근로자는 5만9470명이다. 전체의 54.7%가 자회사 형태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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