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에서 하청업체는 손실 떠안는 범퍼 역할
하청업체 대표 "조선 3사 하청업체 돌려막기"

LNG선과 VLCC를 중심으로 국내 조선사 수주량이 늘고 있다.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국내 조선업이 연초부터 수주를 이어가며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지만, 하도급 갑질 논란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하도급 갑질은 업계의 해묵은 문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부터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선 조선업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선 상생하는 생태계 조성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들은 새해부터 잇따른 수주 소식을 알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달 18일 유럽지역 선사로부터 1550억원 규모 15만 8000톤급 원유운반선 2척을 수주했다고 밝혔고, 대우조선해양도 같은 날 오만 국영해운회사(OSC)로부터 30만톤급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2척을 수주했다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앞서 지난 14일 오세아니아 지역 선주와 VLCC 4척 공급계약을 맺어 올해 총 6척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수주 실적 개선과 별개로 하도급 ‘갑질 논란’은 국내 조선업의 장기적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선시공 후계약’으로부터 시작되는 갑질은 조선사 손해를 하청업체에 고스란히 전가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

업계 한 전문가는 “현재 국내 대형 조선사들이 하청업체를 범퍼 취급하고 있다. 차량이 운전을 잘못해 손해를 입으면 범퍼가 모든 충격과 손해를 흡수하는 식이다. 원청은 조선업 침체에 따른 실적 악화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상황이다. 하청업체가 망하면 또 다른 하청업체를 모집해 범퍼로 사용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하청업체 대표들 사이에선 실제로 “대형 조선사들이 하청업체를 이용해 돌려막기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대중공업의 한 하청업체 대표는 “현대중공업이 사내 협력사 예비 대표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돌리는데, 제출서류에 개인 신용보고서를 내라고 한다. 또 개인의 동산과 부동산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는데, 원청이 하청업체 대표 개인 재정상태를 왜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사이에서는 얼마나 빨아먹을 피가 많은지 보려 한다고 얘기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모든 입찰 과정에서 우리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보기 위해 재정 상태를 묻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공정위는 지난해 갑질 논란에 대한 수사를 벌이며 조선 3사를 칼날 위에 올려놨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대우조선해양에 100여억원의 과징금과 검찰 고발 처분을 내렸고, 올 1분기 안에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라 하도급 갑질 논란 향방이 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하청업체 갑질 문제는 우리나라 조선업이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며 "수주 실적이 개선된다고 해서 문제점을 덮어놓을 순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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