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하나가 생각난다. 따져묻는 빛이었다. "이성애만 주입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진짜 이성애자라고 확실할 수 있어요? 나는 남자를 만나다가 이제 여자를 만나는 언니들을 알아요." 그 자체로 이토록 정답인 질문이었다. 곧이어 또다른 눈빛들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한 수많은 퀴어(Queer·성소수자) 영화 속에서 마주쳤던 것들. <패왕별희>나 <해피투게더>, <아가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눈들과 그 눈은 저마다 어떤 확신을 지녔다는 점에서 매우 닮아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소수자들] 기획에 참여했다. 본진(출입처)을 떠나 뜻 맞는 기자들과 함께했다. 기사의 주제를 두고 가슴이 뛴 것이 처음이었나. 아무튼 나는 부풀어있었다. 뛰는 마음 주체 못(안)하고 어머니에게 기획 기사의 내용을 전했을 때, 어머니는 과거를 더듬었다. 김수현 작가의 팬인 어머니는 “예전에 김수현 드라마에서 동성애 내용이 나와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어. 너 괜찮겠어?”라며 도리어 나를 걱정했다. 엄마, 내가 안 괜찮을 이유가 뭐야. 미세먼지가 더 위험해. 

다만 성소수자인 그들은 실제로 위험했다. 그들은 사랑만 할뿐인데, 이들을 갈라놓으려는 바깥에서 각종 무기를 동원해서였다. 어떤 무기는 언어로서 날카로웠고, 어떤 무기는 실제로 물성을 지녀 사람을 해쳤다. 지난해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던 한 인터뷰이는 "합법 행사임에도 경찰마저 우리 편이 아닌 듯이 반대세력의 폭력을 방관만 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피해는 온몸으로 기억된다.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인천퀴어축제 참가자 305명을 대상으로 참가자 폭력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70%인 215명이 우울 증상을, 84%인 257명이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위험은, 실재한다. 이런 피해의 기억에도 기자가 만난 모든 성소수자들은 올해 여름 열리는 '스무번째' 서울퀴어퍼레이드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랑하겠다는 의지다. 

그들의 눈빛이 확신했던 것은 이거다. "누가 뭐래도 나는 퀴어인걸?" 남들이 아니라면 아니어야 하는 줄로만 알았고, 세상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웅변하는 답만이 답인 줄 알고 살았던 기자는 매회 인터뷰가 끝나면 자신도 모를 창피함에 목도리를 코밑까지 둘둘 말고 "나... 나는 누구야?"라는 질문에 답도 맺지 못하고 징징거리며 마지못해 걸었다. 주류라는 명패 따위 걷어차버리고 "내가 누구"임을 확인한 그들은 무려 담대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것은 '가시화'다. 더 많은 사람들이 퀴어의 이야기를 듣고, 퀴어를 알게되는 것. 그리하여 더이상 숨지 않아도 되는 것. 변방에 레즈비언이 산다(기사 참조:[소수자들-동성애, 보통의 이야기]① 변방에 레즈비언이 산다!)라고 1편의 제목을 달아놓았지만, 우리 모두 사실 저마다 변방이지 않나. 즉, 퀴어의 존재를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그렇게 모두가 어우러지는 사회를 그들은 바라고 있다. 분석이나 이해따위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 (뭘 따져서 뭘 이해할건데.)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만이 유효하다. 

작은 일을 마친 기자는 다시 본진으로 돌아왔다. 시작과 끝이 모두 미약한 듯 느껴져서 얼마간 슬펐다. 하지만 슬픔을 추스르고 나아갈 힘 또한 당시 마주쳤던 그 눈들에게서 얻는다. 멱살을 얼마나 더 세게 쥐어야 하는지에만 골몰했던 기자는 이번 기획 덕분에 유산 바깥의 세상을 잠시나마 바라볼 수 있었다. 더없이 감사한 기회였다.   

눈빛에 이어 멘트 하나도 생각난다. 아주 주옥같은 말이었다.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다같이 점심 메뉴를 정하는데, 인터뷰이 중 한 명의 입맛이 까다로웠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댄다. 기자는 "그럼 도대체 좋아하는 건 뭐에요?"라고 물었고, 그는 "남자요"라고 답했다. 정말 유쾌한 대답이라고 생각했고, 집 가는 길에 그 말이 또 생각나서 조그맣게 웃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이건 맹세같은 소망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