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성범죄 권력관계 얽혀 있어 피해 당시에 폭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과 관련해 15일 강원 강릉 시내에 격려 현수막이 내걸렸다. / 사진=연합뉴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과 관련해 15일 강원 강릉 시내에 격려 현수막이 내걸렸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과거 체육계에서 일어났던 성추행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국가대표팀 코치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심석희 선수를 2014년부터 작년 까지 수차례 성폭행 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태권도협회 이사를 지냈던 한 인사가 과거 자신이 가르치던 여중생 제자들을 성폭행했다는 폭로까지 나왔죠. 물론 당시 인물들은 본인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하튼 계속되는 성범죄 피해 주장과 관련해 왜 그 당시가 아니라 훨씬 시간이 지난 후에 폭로가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당시에 폭로를 하면 경찰이 증거를 수집하기도 용이해 수사도 한결 쉬웠을 것 같은데 말이죠.

필자는 성범죄 전문가는 아니지만 많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피해 당시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특수한 경우고 대부분 피해는 시간이 흐른 뒤에 밝히거나, 아예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성범죄라는 것이 결국 권력관계 하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들을 예로 들어 볼까요. 운동선수로 성공을 하려면 결국 코치나 감독에게 인정을 받고 대회출전 기회 등을 많이 얻어야 합니다. 사실상 그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 코치니까요. 그런 코치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바로 폭로를 하면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까요? 아마 지리한 법적 다툼을 해야 합니다. 또 설사 법적으로 이긴다고 해도 마냥 웃을 수 없습니다. 그런 코치나 감독이 체육계 인맥이 탄탄하다면 온전하게 선수생활을 하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부모님 보는 눈도 있고 하니 그냥 한순간 꾹 참고 메달한번 따자고 생각할 공산이 크겠죠?

이는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직원이 직장 내 성추행을 당하면 이 고충을 이야기할 곳은 결국 인사부서인데요. 만약 성범죄자가 인사부서 관계자거나 인사부서의 생사를 거머쥘만큼 힘이 센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처럼 모두 먹고사는 문제와 결부돼 있기 때문에 피해 당시엔 말을 못하고 속앓이를 하다가 나중에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라 합니다.

결국 그렇습니다. 이 성범죄가 바로바로 알려지기 위해선 피해자 혼자 용기를 내서 될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나 조직이 해당 문제를 깔끔하고 뒤탈 없이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알려봤자 어영부영 처리되고 가해자는 별 피해를 안 보게 되는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성범죄 피해는 계속 이렇게 수년이 지난 후 뉴스를 장식하는 방식으로 알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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