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1심 뒤집고 ‘업무상 사고’· ‘출퇴근 재해’ 모두 인정
음주운전 쟁점은 “증거부족”···‘중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도 불인정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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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후 신호 위반 교통사고로 숨진 근로자더라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 강서구의 한 중국집에서 배달 업무를 하던 A씨는 지난 2016년 7월 사업주로부터 ‘치킨을 먹으려고 하는데 관심 있는 사람은 와라’라는 말을 들었다.

A씨는 직원 5명과 치킨을 먹었다. 사업주는 이들을 위해 맥주도 주문했다. 술자리는 밤 11시 30분쯤 마무리됐고, 비용은 사업주가 모두 지불했다.

A씨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직원 두 명과 식당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마셨다. A씨는 동료들과 자정쯤 헤어진 뒤 사측에서 제공한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다 적색 신호에 직진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A씨의 유족은 이 사건 모임이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이고,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귀가하다가 사고가 났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가 인정돼야 한다며 유족급여 등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A씨가 사업주와 헤어진 이후 직원들과 30분 정도 따로 모였고, 음주운전 및 신호 위반으로 사망했다’라며 유족 측 청구를 거부했다. 유족은 재심 끝에 소송까지 제기했으나 1심 역시 유족 측 청구를 기각했다.

반전은 2심이었다. 2심은 이 사건 교통사고는 산재보호법에서 규정해 산재를 인정하는 ‘업무상 사고’와 ‘출퇴근 재해’에 모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교통사고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의 기준이 되는 ‘업무상 사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이 사건 모임은 사전에 예정된 바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사업주가 근로자들 모두에게 제안해 마련됐다”면서 “사회통념상 노무관리 또는 사업운영상 필요성에 따라 개최된 업무상 회식으로서 모임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는 ‘사업주가 주관한 행사’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출퇴근 재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망인은 모임이 마무리된 직후 회식 장소 앞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귀가하다 사고를 당했다”면서 “잠깐 음료수를 마신 행위는 이 사건 모임과 시간적, 장소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이 사건 모임을 마무리하고 귀가를 준비하는 정도의 행위로서 이 사건 모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밖에 쟁점이었던 A씨의 음주여부, 교통사고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사건 모임에서 맥주가 제공됐다고는 하지만 망인이 어느 정도의 술을 마셨는지에 관한 객관적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면서 “이 사건 모임은 소규모여서 사업주가 당시 근로자들이 술을 어느 정도 마셨는지 어떠한 교통수단으로 귀가할 것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고, 망인은 사업주 등이 충분히 인식한 상황에서 오토바이 운전이 가능한 상태에서 귀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이 사건 교통사고가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지 않는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망인이 적색 신호에 신호를 위반해 직진한 과실이 있지만 당시 망인의 상태, 이 사건 교통사고 현장의 교통 상황, 망인과 상대방 차량 운전자의 시야 확보 상태, 망인의 오토바이와 상대방 차량의 속도 등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면서 “이 사건 교통사고가 망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의 범죄행위에 의해 발생했다거나 통상적인 운전 업무에 내재된 위험성과는 별개로 오로지 또는 주로 망인의 범죄행위로 망인이 사망하였음이 명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산재보험법은 망인의 과실이 분명한 경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과실에 대한 명시적은 규정은 없다. 이에 대법원은 도로교통법위반 등으로 인한 범죄행위에 대해 ‘중과실에 기한 교통사고’ 등만 과실로 인정하고 있다.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사망’은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로 인해 사망한 경우에만 인정된다는 것이 굳혀진 판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사건 교통사고는 업무상 사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며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을 대리한 원고측 유재원 변호사(법무법인 메이데이)는 “1심 패소 판결 이후 유족들과 눈물로 밤을 새웠는데 뒤늦게나마 2심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중학생인 유족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어 보람찼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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