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 없는 태도는 기본···기업 간 융합 강조되며 오너 현장경영 활발해져

최태원 SK회장이 작년 11월 28일(현지시간) 저녁 워싱턴 D.C.의 SK하이닉스 지사에서 열린 'SK Night(SK의 밤)' 행사에 참석해 콜린 파월(Colin Powell) 前 국무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SK
최태원 SK회장이 작년 11월 28일(현지시간) 저녁 워싱턴 D.C.의 SK하이닉스 지사에서 열린 'SK Night(SK의 밤)' 행사에 참석해 콜린 파월(Colin Powell) 前 국무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SK

재벌총수들은 은둔의 경영자라는 등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산업 환경의 변화로 혼자서만 열심히 해선 살아남기 힘들게 됨에 따라, 이제 회장님들도 엉덩이가 무거우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과거 재벌총수들은 좀처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쩌다가 한번 움직이게 되면 엄청난 인원을 동원했고, 대부분 행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실제로 발로 뛰는 사업가라기 보단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스에 가까웠다.

이제 대기업 총수 중에서 은둔하며 지내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오히려 더욱 오너 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비견한 예로 삼성·현대차·SK·LG 4대 그룹만 봐도 그렇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연초부터 삼성전자 수원사업장과 기흥사업장을 연이어 방문하며 현장 챙기기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평소 얌전한 이미지지만 격식 등을 따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현장경영 강점은 특히 M&A(인수합병)와 관련해서 빛을 발한다. 이 부회장은 사실상 경영일선에 나선 이후부터 각국을 돌며 주요 M&A를 성사시켰다. 물론 사업지원TF등 조직의 노력도 함께 있었지만, 이 부회장이 사실상 경영권을 잡으며 삼성의 인수합병이 속도를 내게 된 것은 사실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 부회장 역시 선대와 다르게 세계 각국 현장을 누비느라 분주하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대신 관세 장벽 해결을 위해 미국을 찾았고, 이후엔 유럽 출장길에 올라 현장을 점검했다. 또 주요 기술을 가진 각국 CEO(최고경영자)들을 만나는 등 직접 세일즈맨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정부와 4대 그룹의 사실상 가교역할을 함과 동시에 SK의 사업을 챙기는데도 여념이 없다. 최 회장은 지난해 11차례나 해외출장을 가 4대그룹 총수 중 가장 많은 출장일수를 기록했고 SK는 수많은 인수합병을 이룰 수 있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아직 총수자리에 오른 지 얼마 안 돼 다른 총수들에 비해 움직임이 눈에 띄진 않지만, 그룹 장악력이 확보되고 본격적으로 총수경영에 나서게 되면 인수합병 등 주요 그룹이슈에 직접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6일 베트남 하노이 인근 화락 하이테크 단지(Hoa Lac Hi-Tech Park)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기 엔진부품 신공장 준공식 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앞줄 오른쪽 세번째)와 베트남 쯔엉 화 빙 수석 부총리(앞줄 오른쪽 두번째)가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한화
지난해 12월 6일 베트남 하노이 인근 화락 하이테크 단지(Hoa Lac Hi-Tech Park)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기 엔진부품 신공장 준공식 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앞줄 오른쪽 세번째)와 베트남 쯔엉 화 빙 수석 부총리(앞줄 오른쪽 두번째)가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한화

 

세대교체로 총수들이 젊어지면서 생긴 변화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기 엔진부품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고 현지에서 베트남 증시 시가총액 1위 기업 빈그룹의 ‘팜 느엇 브엉’ 회장을 만나 협업 방안을 논의했다.

재계에선 재벌 총수들이 은둔형 경영을 끝내고 적극적인 현장경영에 나서게 된 가장 큰 배경으로 산업 환경 변화를 꼽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가 바뀌게 되면서 기업들이 혼자서만 열심히 하다간 고립되고 도태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이제 기업들은 산업 환경 변화로 생존을 위해 다른 기업들과 협업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며 “결국 그러한 주요 의사결정을 할 사람들은 한국에선 재벌총수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재계 인사는 “그룹을 대표할만한 인물이 직접 세일즈에 나서는 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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