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규제에 예민해진 조합원들 갈등 고조
정부, 올해도 전방위적 압박기조 유지
“혼란 겪는 사업장 늘어날 수도”

18일 업계 등에 따르면 사업 순항을 예고했던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줄줄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의 고강도 정비사업 규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 사진=연합뉴스

순항하던 서울 주요 재건축단지들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조합 내부의 갈등과 인허가 문제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정부의 고강도 정비사업 규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올해도 현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건축 시장의 한파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18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잠실주공5단지,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용산 한강맨션 등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이들 단지는 입지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업성까지 갖춘 알짜 단지로 꼽히며 순항이 예상됐지만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난 모습이다. 

◇‘잠실주공5단지·둔촌주공’ 학교 이전 문제로 골머리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서울시와 교육청의 신경전으로 사업이 발목을 잡힌 상태다. 최근 이 단지는 지난해 9월에 이어 열린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에서 고배를 마셨다. 교육영향평가는 재건축에 의해 학교를 옮기는 것이 적합한지 따지는 절차다. 준주거지역 종상향이 가능해지면서 기존 신천초등학교 자리에 초고층 단지를 세운다는 게 조합의 계획이다.

하지만 신천초 이전과 부지 기부채납을 두고 서울시와 교육청이 대립하면서 5개월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신천초 부지를 기부채납(공공기여)으로 인정받아 새로운 학교를 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서울시는 이미 중학교 부지와 도시계획도로 등을 기부채납으로 설정한 만큼 초등학교 기부채납으로 하면 임대주택을 더 지을 수 없게 된다며 난색을 표했다. 양측이 인허가 절차에서 의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재건축 사업 지연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역시 지난해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가 반려됐다. 기존 둔촌초, 위례초, 동북중·고 설립이 확정됐지만 남은 1만6000㎡ 학교 부지에 어떤 학교를 추가할지가 쟁점으로 작용했다. 조합은 이 자리에 보성여중·고를 이전 유치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교육청은 과밀 학급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 이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반포3주구·한강맨션’ 사업비로 갈등…‘대치쌍용1·2차’ 재초환 탓에 사업 연기

서초구 반포동에서 알짜단지로 꼽히는 반포주공1단지 3주구(반포3주구)는 조합이 기존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내부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반포3주구 조합은 HDC현대산업개발을 우선협상 시공사로 선정하고 계약을 추진해왔으나 본 계약 전 협상에서 특화설계안, 공사 범위, 공사비 등을 놓고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조합원들은 최근 법원에 시공사 선정 취소 안건에 대해 조합을 상대로 결의 무효확인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20일에는 조합장 해임총회까지 열릴 예정이다. 새 시공사 선정까지는 앞으로 2~3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사업지연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사업비를 두고 조합원간 갈등을 겪은 ‘한강맨션’은 지난달 조합장이 해임되면서 사업지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 전경 / 사진=길해성 기자 

서울 강북권 한강변 최대어로 꼽히는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 역시 사업비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이 단지는 지난해 11월 서울시 건축심의를 빠르게 통과하며 사업에 탄력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사업비를 두고 일부 조합원들이 문제를 제기 했고 급기야 조합장이 해임됐다.

한강맨션 재건축 사업장의 비상대책위원회격인 ‘바른재건축위원회’는 지난달 조합장 해임총회를 열고 조합장 해임안을 가결했다. 비대위는 3월까지 조합을 정상화시키고 향후 정기총회에서 새 조합장을 선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조합 측이 해임 총회 발의 정족수의 적법 여부 등에 대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어 잡음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속도를 내던 강남구 대치동 ‘대치쌍용2차’는 지난해 6월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지만 재건축 초과이익환수금 여파로 사업 시기를 다시 조율 중이다. 옆 단지 대치쌍용1차 역시 같은 이유로 시공사 선정을 보류한 상태다.

◇정부·서울시 올해도 정비사업 압박기조 이어질 듯…“일부 규제 완화도 필요”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서울 재건축 단지들의 사업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와 서울시가 초과익환수제, 대출규제 등 정비사업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어서다. 이러한 기조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규제 강도가 세 질수록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조합원들은 사업비, 사업기간 등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조합과 지자체, 건설사 등 이해관계자간에 의견조율이 되지 않으면 잡음이 일어나는 단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우려되는 부분은 정비사업 규제가 중·장기적으로 수급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며 “최근 집값이 안정화되고 있는 만큼 정부에서도 일부 규제 완화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