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갈등은 윤 회장의 행장 겸직 때부터 발생
대표자 교섭 진행해도 윤 회장 나서지 않으면 갈등 풀기 어려워
회장 리더십 보여야 노조 갈등 따른 은행 이미지 실추 회복 가능

영화 ‘빅쇼트’가 떠오른다. 국내 최대 리테일 은행인 KB국민은행의 파업 사태를 보면서 말이다. 이 영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예측한 실제 인물들을 다뤘다. 영화나 국민은행 사태나 일치하는 건 금융권에서 누가 잘못했든 역시 마지막 피해자는 고객이구나 싶다. 그런데 일치하는 점 하나가 또 보인다. 

영화도 언급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태의 책임을 졌던 금융권 CEO는 거의 없었다. 이들은 오히려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소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 구호를 내세운 시위는 이런 행태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영화에서 지적한 것은 이것이다. 책임져야 할 금융권 임직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상사의 명령이었어”, “그건 부하 직원의 실수야”, “나만 왜 책임져”.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고 외면하는 행동들. 영화에선 월가의 시스템은 결코 완벽하지 않고 지극히 허술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는 다르게 봤다. 월가의 시스템은 매우 완벽했고, 인간이 예상보다 더 어리석었다. 혹은 영악했다.

국민은행 노사 문제도 비슷하다. 지금은 노조의 잘못을 지적하는 여론이 많다. 성과급 300%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총파업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기자수첩] 노사, 고객 모두 피해자였던 국민은행 파업'에서도 썼듯 이번 총파업은 성과급 하나로만 설명되는 파업이 아니다. 그것은 단면만 본 판단이다.  

국민은행 노사 갈등은 1년 넘게 이어졌다. 매번 악화일로의 늪이었다. 그러다 최근 산별중앙교섭 합의안보다 후퇴한 내용을 사측이 내놨고 노조는 단체협약을 위반했다는 점과 함께 성과급 문제를 거론했다. L0 직급의 근무경력 불인정, 페이밴드 확대, 점포장 후선 보임제 등 문제들이 쌓이고 쌓이다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노조가 고객을 볼모로 총파업을 진행했다는 지적도 옳겠지만 긴 시간 노사 관계를 풀지 못하고 여기까지 끌고 온 사측 책임도 작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땐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봐야한다. 그래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지금 국민은행 노사는 허인 행장과 박홍배 노조위원장을 필두로 대표자 교섭을 진행 중이다. 교섭 후에는 노사 모두 같은 말을 한다. “입장차만 확인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허인 행장은 노사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이후 행장으로 선임된 사람이다. 문제의 발단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은 허인 행장 전으로 올라간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국민은행 행장을 겸직할 때 발생한 일들이 쌓여온 것이다. 지금은 당사자끼리 만나 교섭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비당사자가 만나는 상황일 수 있다.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윤 회장이 나서서 현 노사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하 직원 책임이다’, ‘후임 행장이 할 일이다’, ‘이미 사과했다’라고만 말하면 사태는 해결되기 어렵다. KB금융지주의 최고 경영자라면, 주주의 이익을 위한다면, 조직의 안정을 원한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본인이 행장일 때 발생한 노사 갈등이다. 직접 나서도 문제가 없다. 

일각에선 이번 총파업을 ‘디지털금융 덕에 은행원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평가한다. 국민은행에 몸 담고 일하는 직원들을 향해 ‘필요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조에 대한 비판이 조직원 전체를 향하고 있다. 노조를 향한 날 선 비판이 결코 사측에 좋을 게 못 되는 이유다. 이런 말을 듣고 일할 맛이 날 은행원이 있을까. 은행원을 향해 고조되는 비난을 해결하지 못한 채 조직이 일할 분위기 넘치는 곳이길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이다.  

결국 노사 갈등이 길어지면 노조뿐 아니라 은행 피해도 막심해진다. 윤 회장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국민은행 파업 문제를 단순히 ‘귀족노조’ 프레임만으로 말하면 이번 사태는 풀기 어렵다.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지난 1년이 이를 증명한다. 노조와 타협하고 사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일 기회다. 노조에 끌려다니는 회장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회사를 위해 나설 줄 아는 리더로 인정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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