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블럭에 한 상가꼴로 점포정리·임대문의
“삼청동 특색 사라진 게 가장 큰 문제”
“임대소득세 감면 혜택 등 건물주에게 당근 제시해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한 1층 상가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있다./사진=김희진 기자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한 1층 상가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있다./사진=김희진 기자

 

“이러다가 체인점 말고는 수제비집이랑 단팥죽 집만 남게 될 것 같다”

17일 정오께 찾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잡화점에서 2년 넘게 직원으로 근무했다는 강아무개(26)씨는 상권의 분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강씨가 근무하는 가게 입구 왼쪽에는 ‘점포정리’, ‘80% 세일’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점포정리의 이유를 묻자 그는 “삼청동이 몇 년 새 임대료가 폭등하고 체인점이 많아지기도 하니 볼거리가 없어져서 손님들의 발길이 많이 끊겼다”며 “사장님은 건물주라 임대료 영향을 받진 않았지만 결국 임대료 상승의 여파가 건물주에게도 돌아가는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 종로구의 대표 상권으로 꼽히던 삼청동의 공실 상가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삼청동의 빈자리는 점차 프랜차이즈로 대체돼 가는 모양새다. 빈 상권을 프랜차이즈가 점령하면서 삼청동만의 특색 있는 상권이 개성을 잃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잡화점에 점포정리 현수막이 걸려있다./사진=김희진 기자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잡화점에 점포정리 현수막이 걸려있다./사진=김희진 기자

 

◇ ‘점포정리’ ‘임대문의’ 현수막 즐비…곳곳이 ‘텅텅’

평일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점과 카페를 비롯한 삼청동 상가들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거리 초입부터 드문드문 보이던 ‘점포정리’, ‘임대문의’ 등의 현수막은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보였다.

금융연수원을 지나서 더 올라가자 두 블럭에 한 점포꼴로 임대문의나 점포정리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갈수록 그나마 있던 인적도 끊겨 거리와 음식점들이 모두 한산했다. 삼청동의 한 음식점 발렛파킹 요원은 “주말엔 그나마 손님이 많지만 평일에는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삼청동에서 42년 넘게 단팥죽 가게를 운영해온 A씨 역시 “전보다 손님이 줄긴 줄었다”고 답했다. A씨는 “우리 가게가 76년도에 장사를 시작했고 근처의 수제비집은 82년도에 장사를 시작했다. 그 외에 남은 노포는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삼청동이 포함된 종로구의 공실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종로구의 지난해 3분기 말 공실률은 5.8%로 2분기 말(2.8%)보다 2배 넘게 상승했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삼청동의 한 매장에 점포정리 안내문이 붙어있다./사진=김희진 기자
17일 오후 서울 중구 삼청동의 한 매장에 점포정리 안내문이 붙어있다./사진=김희진 기자

 

◇ “삼청동만의 특색 사라지니 사람들 발길도 끊겨”

삼청동을 찾던 수많은 발걸음이 끊긴 이유는 무엇일까. 주민들은 “지역 특색이 사라진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

70년 넘게 삼청동 토박이로 거주해왔다는 B(83)씨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결국 임대료 때문에 세입자가 쫓겨나고 지역 특색이 사라졌다”며 “상권이 나빠지면 결국 건물주도 손해를 보게 되는 법인데 대부분의 건물주가 외지인이다 보니 이런 현실을 모르고 임대료 타협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삼청동은 2000년 초반부터 화랑·갤러리·개인작업실 등 문화적 개성을 앞세운 골목으로 방문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0년 들어서는 홍대와 이태원과 같은 소위 ‘핫플레이스’로 거듭나 많은 블로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이 찾는 명소로 부상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일본 등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필수 관광코스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상권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방문객은 점차 늘어갔고 임대료 역시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 올라가는 임대료를 버티지 못한 영세상공인들과 예술가들은 삼청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삼청동의 빈자리는 자본력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들이 우후죽순 들어서자 삼청동만의 매력이 퇴색됐다. 그렇게 소비자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게 된 오늘날이 삼청동의 현주소다.

17일 오후 삼청동 한 음식점에 점포정리 안내문이 붙어있다./사진=김희진 기자
17일 오후 삼청동 한 음식점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있다./사진=김희진 기자

 

◇ “상생 위해선 건물주와 세입자 간 타협 필요해”

삼청동이 쇠락기로 접어든 주요 원인이 높은 임대료인 만큼 상권 상생을 위해 건물주와 세입자 간 현실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삼청동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C씨는 “공실 상가는 대부분 건물주들이 세입자의 사정이나 경기 현실을 고려하지 못해 현실 타협이 잘 안 된 경우”라며 “한창 호황일 때 가격만 생각하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C씨는 “건물주들은 건물을 비워두면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그렇게 비워둔 건물이 상권에 악영향을 미치고 건물 자체도 상하게 된다”며 “건물주도 세입자와 임대료를 타협해서 상권을 살리는 게 상생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정부가 상생협약 표준안 마련을 통해서 건물주와 임차인 간 긍정적 관계를 조성하게끔 유도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이라며 “건물주의 배려에 기대 임대료를 그저 인상 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상생협약도 좋지만 건물주의 임대료 상승 욕구를 상쇄시킬 수 있도록 임대소득세 적극적 감면 제도 등의 직접적인 당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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