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충실한 사업자들에 우려하지 않을 결론 나오길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을 통한 대기업 회장 개인 대출이라는 지적과 함께 금융당국의 제재 심의 대상이 되면서 증권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제재를 받을 수도 있는 한국투자증권이야 당연히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다른 사업자들 역시 금융당국의 엄격한 잣대 속에 투자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업의 본질을 재원이 필요한 산업 현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으로 본다. 금융업 자체로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지만 제조업이나 건설, 각종 서비스업에 자금을 투입해 가치를 창출하도록 돕는 산업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잘못된 자본 활용의 감독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마련한 자금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을 위해 투입되는 일은 금융투자업 본질에도 해가 된다. 

그러나 가끔은 기존 규제가 자금 공급을 가로막기도 한다. 금융업의 혁신은 이 과정에서 자금이 잘못 흘러들어가지 않고 필요한 분야에 공급되도록 돕는다. 현대 문명의 결정체인 자본주의도 주식과 채권이라는 금융투자업의 자본조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주식이 있었기에 무한책임에서 벗어나 조금 더 모험적인 투자가 가능했다. 지금 나오고 있는 다양한 파생상품도 혁신적인 기업가들의 리스크를 줄여준다. 리스크는 나누거나 줄이고 자본공급은 원활하게 하는 것은 금융투자업의 본질이고 존재 이유다. 

서두에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금융업의 본질을 길게 이야기한 것은 새해 들어서도 장기화되고 있는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및 총수입스왑(TRS) 관련 제재 문제 때문이다. TRS의 복잡한 구조 때문에 논쟁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지만, 이번 문제는 금융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제다.

상품구조나 법률적 해석, 활용 사례나 법정 분쟁시 판례를 모두 지우고 본질을 보면 이번 거래에서 TRS는 고정된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주식 소유를 통한 가치의 변동 위험을 해소하는 금융 상품이다. TRS거래는 거래 당사자간 계약이기 때문에 개별 거래마다 계약 조건을 맞춤 설정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악용될 수 있지만 핵심만 놓고 보면 위험과 비용의 교환인 셈이다. 여기에 개인 대출인지 기업대출인지를 표면만 놓고 고민하는 일은 나무를 보다가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금융당국의 고민도 이해할 만한 부분이다. 발행어음은 정부가 초대형투자은행(IB)를 추진하면서 일종의 고유 사업으로 인정해준 사업이다. 증권거래수수료 라는 단순한 수익구조를 탈피해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과 모험자본 육성을 위해 힘을 실어줬다. 따라서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이 사업이 단순한 개인 대출로 이자 장사에 활용되지 못하도록 제한을 뒀다. 복잡한 거래구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할지 차이가 발생하고 있지만 한국투자증권의 사례도 당초 취지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일부에서는 발행어음 1호 사업자 한국투자증권이 중징계를 받을 경우 해당 사업을 허가받은 초대형IB 대다수에게 제동이 걸릴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은 초대형IB 추진 초기에도 제기되던 문제다. 당시에도 증권사들은 발행어음을 허가해준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많지 않다는 점을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와 금융당국이 증권사들에게 손쉬운 수익원을 늘려주기 위해 초대형IB를 추진한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이 한국투자증권 제재안을 두고 어떤 결론을 낼지 아직도 예상하기 힘들다. 제재안을 두고 고뇌가 깊어지면서 관련 업계에서는 어떤 결론이 나와도 모두가 납득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금융투자업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업자라면 우려하지 않을 만한 결론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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