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신용보강 책임 수행···발행어음 개인 대출 해석 과도할 수 있어
개인대출 활용 가능성 묵인할 경우···발행어음 사업 취지 무색

한국투자증권의 총수익스왑(TRS) 거래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제재 심의가 장기화되면서 어떤 결론이 나와도 뒷말이 남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거래 구조상 한국투자증권이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중징계를 내리기엔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 역시 발행어음 사업의 허용 취지를 벗어날 수 있는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7년에 SK실트론의 지분 19.4%를 기반으로 하는 TRS 거래를 주관했다. TRS는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 등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보장매도자로부터 고정 수익을 지급받는 대신 보장매도자는 기초자산의 매각에 따른 수익과 손실을 이전받고 이를 정산하는 형식의 파생상품이다.

한국투자증권과 최태원 SK 회장 사이의 TRS 거래는 기초자산으로 SK실트론 주식을 사용했다. 구체적으로는 SPC가 단기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뒤 SK실트론 주식 1299만5000주를 매입하고 해당 주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총수익(배당 및 추후 주식 매도시 차익)을 최 회장에게 이전한다. 최 회장은 약정 이자를 SPC 제공하는 형식이다. 한국투자증권은 SPC의 업무수탁자로 자산 관리와 지분 보유에 따른 공시 등 관련 업무를 맡는다.

금융당국은 이번 TRS 거래가 사실상 최태원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매입을 위한 개인대출로 활용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거래 과정이 복잡하지만 단순화할 경우, SK실트론 지분을 한국투자증권이 SPC를 설립해 대신 매수해주고 최 회장은 여기 투입한 자금의 조달비용에 상응하는 약정 이자를 지급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의 TRS 발행 구조 / 이미지=시사저널e
한국투자증권의 TRS 발행 구조 / 이미지=시사저널e

이번 TRS 거래가 개인대출인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이유는 업무수탁자인 한국투자증권이 국내 발행어음 1호 사업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초대형 투자은행(IB)에게 발행어음 사업을 허용해주면서 해당 자금을 개인 대출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발행어음 사업자라는 이슈를 놓고보면 제재를 심의할 이유가 사라진다. 실제로 같은 방식으로 TRS 거래를 진행한 삼성증권의 경우 제재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발행어음 자금의 개인대출 활용 해석…억울한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입장에서는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개인대출로 사용했다는 금융당국의 지적이 억울한 상황이다. 일단 이번 거래 구조에서 SPC는 기초자산을 유동화해 단기 자금을 조달하고 계속해서 차환하는 식으로 자금소요를 해결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SPC 신용도를 보강하기 위해 한국투자증권이 유사시 SPC가 발행하는 사모사채를 매입하는 의무를 졌다. 

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는 SK실트론 주식을 유동화하는 방식으로 지난 2017년 8월 30일 1682억원 규모의 전자단기사채(전단채)를 발행했다. 만기는 3개월이기 때문에 이 기간마다 차환이 반복되는 구조다. 실제로 키스아이비제16차는 3개월 뒤인 2007년 11월30일에 1695억원 규모의 전단채를 발행했다. 

한국투자증권은 SPC가 유동화증권의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SPC가 발행하는 사모사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신용보강을 제공할 의무를 갖고 있었다. 덕분에 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는 단기 채무 신용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A1 등급을 확보했고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SPC가 발행할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도 모두 동일한 신용등급을 적용받았다. 여기까지는 다른 증권사들도 당연히 진행하는 구조다. 증권사 역시 손해를 보고 사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TRS 거래를 통해 받아올 약정이자보다 SPC의 조달 비용을 낮춰야 했기 때문이다. 

키스아이비 제 16차 전단채 발행 내용 / 표=한국예탁결제원
키스아이비 제 16차 전단채 발행 내용 / 표=한국예탁결제원

한국투자증권이 부담한 신용보강 의무가 실제로 실행되지 않았다면 이 거래는 아무런 문제없이 마무리됐을 예정이었다. 문제는 지난 2018년 초 자금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조달비용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3년물 이상의 회사채를 활용해 자금을 조달했던 다수의 기업들이 추후 조달비용이 낮아지길 기대하면서 단기사채를 활용했고 전단채 역시 조달비용 상승을 피해가지 못했다. TRS 계약상에는 조달금리 상승분을 업무수탁자인 한국투자증권이 조절하게 돼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SPC에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1673억원을 투입하면서 조달금리를 낮췄다. 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는 현재 업무수탁자인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유동화전자단기사채 발행계획을 취소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당 시기 시장 상황이 한국투자증권이 SPC의 전단채를 활용한 차환을 이어가지 않을 만큼 어려웠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거래 구조만 놓고 보면 금융투자업계 대부분이 비슷한 구조를 활용한다한국투자증권 역시 금융당국이 이렇게 문제 삼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역시 한국투자증권이 신용보강 의무를 지고 발행어음 자금을 투입했다는 전반의 과정을 알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TRS거래를 짤 때부터 고의적으로 발행어음 자금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이는 중징계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관행처럼 이뤄지는 거래구조에 철퇴를 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힘을 받는 이유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징계 없이 이번 사안을 마무리 짓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발행어음 사업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과 모험자본 육성을 위해 증권사의 대형화에 힘을 실어줬다. 자본을 늘려도 다른 증권사들과 차별화할 부분이 많지 않다는 금융투자업계 우려에 발행어음 사업을 허가해줬다. 대신 이 사업이 단순한 개인 대출로 이자 장사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뒀다. 기업에 자금을 조달해 한국 경제 전반에 활력과 성장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이런 취지와 달리 TRS를 활용해 우회하는 방식으로 개인대출을 인정해줄 경우, 다른 사업자들도 손쉬운 이자 장사에 매달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1호사업자의 특수성…전례 인정할 경우 발행어음 사업 취지 무색

주식 취득을 기반으로 한 TRS 거래만 놓고 보면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 특별한 일은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경 국내 금융시장에 소개됐고 5년만인 지난 2014년 16조원 규모의 거래로 성장했다. 주로 자금이 부족한 기업 총수나 그룹 지배 회사 등이 이런 방식의 거래를 종종 활용해 왔다. 대표적으로는 과거 현대엘리베이터와 아시아나항공 등에서 TRS를 활용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주식의 실제 소유자가 누구인지 의결권은 어디로 귀속되는지가 논쟁이 붙기도 했지만 판례에서는 대부분 주식을 가져간 SPC의 의결권을 인정하고 있다. 

TRS거래는 거래 당사자간 계약이기 때문에 개별 거래마다 계약 조건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향후 주식을 다시 되사올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경우 SPC가 실제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TRS 거래에서는 우선매수권 등의 권리를 포함하지 않는 추세가 일반화 됐다. 쉽게 말하면 최근 나오는 TRS 거래는 대부분은 SPC의 주식 소유권과 의결권을 인정받는 구조인 셈이다.

SPC의 주식소유권과 의결권을 인정할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의결권이다. 예를 들어 A회사가 B회사 지분을 100% 소유하면서 지배하고 있고 B회사가 다시 A회사 지분 30%를 갖고 있다고 할 경우, 상호출자 제한에 따라 B회사 지분 20%는 의결권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B회사가 SPC에 TRS거래를 통해 지분을 넘길 경우 해당 지분의 의결권은 살아난다. 그러나 기업총수와 금융서비스 제공업체의 지위를 감안하면 이 의결권은 독립적으로 행사되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승계문제나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벌 총수들이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일종의 특혜인 발행어음 사업이 재벌 총수들을 돕는 자금으로 활용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 없을 것이라며 좋지 않은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고뇌가 불가피하지만 한국투자증권이 징계를 받더라도 뒷말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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