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73% 갑질 경험···‘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오는 7월1일부터 시행
전문가들 “법에서 제외되는 대상에 특별 조치 취해줘야”

최근 서울의료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직장 내 갑질’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 그래픽=셔터스톡
최근 서울의료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직장 내 갑질’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 그래픽=셔터스톡

# 중소기업 인턴사원 A씨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오전 회의를 준비해야하고, 퇴근 후에는 상사가 직원들에게 술을 강요해 이른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없기 때문이다.

# B씨가 근무하는 회사의 한 임원은 직원들 기피대상으로 꼽힌다. 본인 기분에 따라 직원들의 업무를 트집 잡거나 서류를 집어 던지는 등 이유 없기 괴롭혀서다. B씨는 “신고하고 싶지만 불이익을 당할까봐 못하고 있다. 상사가 어떤 식으로든 회사생활을 힘들게 만들 것”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서울의료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직장 내 갑질’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빈번히 일어나고 있지만 해결여부는 여전히 숙제로 남은 가운데, 국회가 지난해 본회의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통과시켜 오는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만큼 ‘직장 내 갑질’이 근절될지 관심이 모인다.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최근 직장인 7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3명 중 1명은 직장에서 겪는 불리한 행태가 매우 심각(5.6%)하거나 심각한 편(25.9%)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만 20~64세 남녀 1500명 중 73.7%가 직장 갑질 피해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7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 자료=직장갑질119,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7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 자료=직장갑질119,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직장 내 갑질 행태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자 국회는 지난해 12월27일 본회의에서 직장 잡질 근절을 위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통과시켜 오는 7월1일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직장 내에서 사용자나 근로자가 업무상 우월적 지위 또는 관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약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의 사용자의 조치 의무와 가해자에 대한 징계 규정,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에 포함시키고 입증책임 배분 규정 등도 포함된다.

그동안 유럽 등 일부 해외 국가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례, 법을 만들어 직장 내 괴롭힘을 명확히 규율했지만 한국은 법 제정조차 못하고 있었다. 다만 국회 본회의서 법이 통과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 개념이 법에 도입됐고, 피해자 보호와 사용자의 2차 가해 처벌 규정이 마련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재 인정범위를 넓혀 직장 갑질을 줄이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들의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함에도 법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근로기준법에 따라 규정하다보니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간접고용,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은 이 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실제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최근 제보 받은 2만5000건 중 직장 내 괴롭힘은 정규직 상사가 파견직, 용역직, 특수고용직 등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행하는 경우가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내 한 어린이집 교사 이아무개씨(33)는 “당초 입사 때 올해는 임신 계획 중이라 중도에 나갈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지만 얼마 전 퇴사 면담에서 상사가 퇴사를 못하게 막았다”며 “퇴사하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동종업계에 뿌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총괄스텝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제보는 하루 평균 40건 정도에 달할 정도로 많은데 국회서 관련 법을 통과시켜 7월부터 시행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며 “다만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까지 해당 규정이 적용되기 위해선 별도 하위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한계로 남은 것 같다. 정부가 법 개선을 위한 검토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법안이 마련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사업장이 열악하거나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라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예외 조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고, 그 논의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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