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경쟁에서 이미 한발 늦어···법인세 인하 고려해야할 때

“낮다, 높다, 적정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을 두고 여기저기서 내놓는 말이다. 정권이 바뀌고 법인세율이 인상되면서 일단락된 것 같았던 세율 논쟁이 최근 다시 불붙고 있다. 기업이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세법개정이 이뤄지는 시기에, 법인세가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무엇보다 국가 간 벌이는 조세경쟁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영향력 있는 한 국가가 또는 경제규모가 비슷한 국가가 법인세율을 내릴 때 이해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세율을 인하한다는 이론이다. 기업에게 당근을 주고 반대급부로 세수를 확보하자는 차원이다.

아일랜드의 사례를 보면 법인세율은 국가의 운명까지 가른다. 아일랜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11년 11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67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세수는 늘리고 지출은 줄이는 긴축재정을 실시하면서 각종 복지수당과 무상공급을 대폭 줄였다. 이런 노력으로 약 2년 후인 2013년 12월, 아일랜드는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먼저 구제금융에서 졸업했다.

국가부도를 맞은 아일랜드가 실시한 경제정책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바로 법인세 인하다. 당시 아일랜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법인세를 세계 최저수준인 12.5% 내렸는데 이후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유럽본부를 아이랜드로 옮긴 것이다.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서비스 등 관련 벤처기업들도 아일랜드로 몰렸다. 수출은 덩달아 늘었고 법인세수는 30억유로(2015년 기준)나 더 걷혔나. 법인세를 인하했는데도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49년 만의 최저 수준 실업률과 유례없는 기업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역시 법인세 인하가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대규모 감세정책을 시행해 올해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내렸다. 미국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1%포인트를 더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법인세가 다시 논쟁이 붙은 이유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통계와 좀처럼 살아나지 않은 경기 때문이다. 법인세를 인하한 국가들은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 소위 잘나가고 있는데 한국은 비교조차 안 되는 초라한 경제성적표가 계속되고 있다.

법인세 인상 또한 재벌개혁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는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 인하에 당연히 부정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정치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 "(법인세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며 인하 문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하가 답답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국내경기의 물꼬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실험을 최초로 시행한 정권답게 말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될 때, 그 때하기엔 너무 늦다. 조세경쟁에서 우린 이미 한 발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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