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보다는 사람이 편해”…10분 기다려야 겨우 주문
“무인주문기 있는 곳은 꺼려지는 게 사실”
“노년층의 특성을 고려한 정부 차원의 정보화 교육 필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80대 고객이 키오스크 대신 매장 직원에게 주문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사진=김희진 기자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80대 고객이 키오스크 대신 매장 직원에게 주문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사진=김희진 기자

“한참 기다려도 어쩔 수 없지. 기계(키오스크)로 주문할 줄도 모르고…”

10일 오전 11시 40분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 조아무개씨(80)는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했다. 카운터 앞을 5분가량 서성였지만 점심시간 주문이 몰리는 탓에 매장 직원들은 조씨의 주문을 받을 여유가 없었다. 카운터 전면에는 키오스크(무인주문기)가 여러대 놓여있었지만 조씨는 무인주문기가 마냥 ‘벽’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렇게 3분을 더 기다려서야 조씨는 직원에게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되면서 무인결제기 사용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이 ‘디지털 소외’ 현상을 겪고 있다. 기술 발전과 인건비 절감을 고려했을 때 무인화 확산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만큼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사회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50대 고객이 매장 직원에게 주문을 하고 있다./사진=김희진 기자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50대 고객이 매장 직원에게 주문을 하고 있다./사진=김희진 기자

40분가량 매장을 오가는 손님들을 지켜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주문하는 모습과 달리 조씨를 비롯한 노년층들은 키오스크를 제치고 곧바로 카운터에서 주문을 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는 이아무개씨(27)는 “키오스크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은 대부분 카운터에서 와 직접 주문을 하신다”며 “때로 무인주문기 조작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는 어르신도 더러 계신다”고 말했다.

노년층들은 “기계가 어렵고 불편해서 사람한테 주문하는 게 편하다”며 입을 모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임아무개씨(58)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기계 쓰는 게 어렵고 불편하다”며 “무인주문기는 현금도 안 받기 때문에 사람한테 주문하는 게 더 편하다”고 말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70대 고객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넣고 있다./사진=김희진 기자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70대 고객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넣고 있다./사진=김희진 기자

종로구에 위치한 또 다른 패스트푸드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해당 매장은 ‘셀프 오더’ 타임을 정해두고 특정 시간에는 무인주문기를 통해서만 주문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창래(79)씨는 평소 직원을 통해서 주문을 하지만 셀프 오더 시간 때문에 키오스크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기 위해 화면을 이곳저곳 여러 번 터치했다. 시행착오 끝에 원하는 메뉴를 찾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씨는 평소 스마트폰을 사용해 스스로 터치스크린에 익숙한 편이라고 생각했음에도 워낙 메뉴도 많고 이런저런 선택 단계가 많다 보니 실수로 원하지 않는 메뉴들까지 주문 품목에 담긴 것이다.

“삭제를 어떻게 하는거냐”며 당황하던 이씨는 기자의 도움 끝에 불필요한 메뉴들을 삭제하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수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 느리고 굼뜨다 보니 이런 데에 익숙지 않다”며 “젊은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햄버거도 못 먹는 세상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나 같은 노년층은 소득이 적어 패스트푸드점 같은 값싼 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곳은 대부분 무인화가 많이 진행돼 있다”며 “자동화 시대가 도래하고 인건비도 오르다 보니 무인기기가 많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럴 때마다 소외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평균 디지털 정보화 수준을 100%로 했을 때 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58.3%에 불과했다. 특히 이 중 70대 이상은 25.1%로 현저히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패스트푸드점 같은 식당뿐만 아니라 영화관, 기차역 등 업계 곳곳에서 무인화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디지털 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고아무개(59)씨는 “요새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으로 기차표를 예매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역에서 표를 사려고 하면 대부분 매진이다”라며 “곧 있으면 구정인데 이번에도 입석밖에 표가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임춘식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은 “무인화와 자동화 흐름은 삶의 편의성을 향상시킨다는 장점이 있지만 노년층 입장에선 이런 기술을 접하고 사용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다”며 “노인들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응력이 부족하므로 이런 점을 고려해 정부에서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정보화 교육 등을 확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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