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시행, 고객 폭언 등 발생 시 업무중단권 보장
현장선 실효성 부족 지적…“업종별 근로실태 조사해 업무중단 방식 구체화해야”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최근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부산이 승객의 부당요구를 거부한 승무원에게 경위서를 받아 논란을 사면서 ‘땅콩회항’, ‘컵라면 상무’ 등 수년간 이어진 항공업계의 '갑질' 논란에 불길을 더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비행 중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항공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부실해 유사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도 제도화 초창기인 탓에 객실 승무원의 감정노동 짐을 덜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법적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과 기업들의 협조를 요구한다.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해 같은해 10월 18일부터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고객의 폭언 등 괴롭힘으로 인한 고객 응대 근로자의 건강장해에 대한 사업주의 예방조치를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사업주는 고객의 폭행, 폭언 예방을 위한 문구를 사업장에 게시하고 고객 응대업무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고객의 폭행‧폭언으로 인해 건강장해가 우려되는 근로자에겐 휴식을 부여하거나 업무를 일시 중단케 해 현장을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건강장해가 발생할 경우 치료 및 상담을 지원해야 한다. 사업주의 조치가 미흡하면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차등 부과될 수 있다.

고객 응대 근로자의 권익을 신장하는 입법 취지와 달리 제도화 초기인 탓에 아직까지 현장 일선에 고루 적용되진 못하고 있다. '고객 응대 근로자'라는 대상 범위는 포괄적이나, 아직 업종별 업무중단 방식에 대한 개별적 지침과 방향성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특히 '비행'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근무하는 항공사 객실 승무원은 현실적 여건상 법 적용이 어려운 모습이다. 지상 업장과 달리 비행 중인 항공기 안에서 대면 업무를 수행하는 승무원은 고객 폭언 등으로부터 벗어날 공간이 여의치 않고, 업무를 중단해도 대체 인력을 새롭게 충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에서 근무했던 한 객실 승무원은 “감정노동자보호법은 고객의 폭언 등에 대한 ‘노동회피권’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법 적용이 된다고 해도 승무원이 비행 도중에 업무 현장으로부터 벗어날 곳이 어디 있겠나”며 “한정된 항공기란 공간에 매번 노동을 대체할 여유인력을 태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제도적 한계를 지적했다.

또 다른 대형 항공사 객실 승무원 이아무개씨는 "업무중단권을 보장 받는다고 해도 항공사 규칙상, 승무원들이 현장에서 벗어나도록 허락해줄지 의문이 든다"고 설명했다.

현재 근로 현장에선 고객의 부당요구 및 폭언 사태가 발생할 경우 사무장이 대응하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적 대형 항공사 객실 승무원 황아무개씨(25)는 “고객 민원은 사소한 것부터 과도한 것까지 수시로 발생한다.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 서비스를 요구하며 억지를 부리는 경우는 예사”라며 “더 큰 문제는 항공 안전 상 지켜야 하는 규칙을 어기는 경우다. 승객이 지속적으로 지시를 어기거나 상황 대처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사무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사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아직까지 법 시행된 지 2개월가량 지난 상황이라 행정해석이나 판례가 축적된 상황이 아니다. 다만, 고객 응대 근로자를 물리적으로 해석하면 항공 승무원은 당연히 범위에 포함될 것으로 본다"며 "비행 중이라는 특수 상황에선 해당 근로자의 배치를 바꾸는 식으로 폭언 현장으로부터 분리하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종별 근로 환경을 고려한 제도적 보완 논의가 요구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기업의 협조도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양대 대형사를 비롯, 항공사들이 승객의 칭찬 및 컴플레인 등 민원을 승무원 인사평가에 반영해 과도한 감정노동에 노출시켜왔다는 지적이다.

대형 항공사의 승무원 황씨는 “‘칭찬레터’로 불리는 칭송 편지가 인사평가에 반영되는 걸로 안다. 업무 효율을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동료들과 비교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항상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팀제로 운영되는 승무원 업무 특성상 고객 컴플레인이 그룹 전체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시스템 자체가 부당대우를 받아도 참고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다만 양대 항공사는 승무원 인사평가는 종합적으로 이뤄지며 고객 컴플레인의 경우 전후 맥락을 확인해 객관적으로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승무원 인사에 있어 서비스, 품질, 자기계발, 안전보안 등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고객의 칭송‧불만 등은 승무원의 그룹평가와 연계, 그룹원 전체 평균으로 반영되나, 그룹장, 매니저, 승무원 등 직책 및 책임에 따라 반영 비율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대한항공 역시 승객 칭송 및 불만을 개인평가 및 팀 평가에 반영 중이다. 그러나 승무원이 받은 악성 클레임에 대해선 담당 부서에서 전후 맥락을 파악해 평가에서 제외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에 따라 기내에서 승무원의 건강 장해 상황 발생 시, 객실 사무장의 관리 하에 해당 승무원의 담당 업무 일시적 중단 또는 즉시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필요할 경우 상황 유발 승객과 분리된 공간에서 휴식 및 치료‧상담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명숙 활동가는 "승객 컴플레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점처리 방식이 개선돼야 하는 동시에 고객에게도 승무원이 부당요구 및 폭언을 받을 경우 업무 중단이 가능하다는 교육이 동반돼야 한다. 고객이 업무중단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갈등이 더 불거질 수 있다. 여기에 직종별 근로 실태조사가 이뤄져 업무중지 방식이 구체화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제도 보완, 시민 교육, 기업의 인사평가 개선 등이 함께 동반돼야 장기적으로 실효성을 거둘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관계자는 "항공사 승무원도 충분히 법 적용 대상이라고 판단된다"며 "아직 직종 대상이나 범위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법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올해 중으로 실태 점검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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