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당당하지 못한 내가 싫었다”…아웃팅 협박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성소수자 연인 간 ‘안전 이별’도 필요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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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도 당당하지 못했던 적이 없었는데……. 어디 말할 곳도 없고 울 곳도 없어서 차 안에서 한참 울었어요. 4년 전 일인데도 아직 생생해요. 부모님은 제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데 애인이 일방적으로 어머니께 전화해서 저에 대해 얘기하고, 회사에도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질렀죠.”

성소수자들에게 아웃팅은 가장 두려운 일이다. 가족과 주변에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하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리는 이들도 있지만 이를 원치 않는 성소수자들이 더 많다. 이런 점을 역으로 이용해 성소수자 연인 간에 보복성 아웃팅, 이른바 리벤지 아웃팅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웃팅은 성소수자의 성 정체성이나 성별 정체성 등을 본인의 동의 없이 타인이 밝히는 행위를 말한다. 성소수자들에게 아웃팅은 폭력이다. 여기서 리벤지 아웃팅은 성소수자의 연인이 이별이나 다툼에 보복하기 위해 연인을 아웃팅하는 것으로 정의하려고 한다. 아웃팅을 빌미로 연인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고 끌고 가려는 목적의 행위다.

4년 전 연인을 만나 리벤지 아웃팅을 당했던 A씨는 당시 연애를 지옥으로 기억한다. 40대의 연인을 만났기에 아웃팅을 무기로 자신을 괴롭힐 줄을 몰랐다고 A씨는 회고했다. A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험한 단어가 나올 수 있으니 놀라지 말라는 말을 앞세웠다.

A씨의 과거 연인은 A씨와 다툼이 있을 때마다 A씨 어머니 전화번호를 들먹거리며 전화를 해서 A씨의 정체성을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실제로 통화를 해서 A씨의 정체성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A씨는 자신의 부모님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다 자신이 커밍아웃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께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의 경우 공무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혹여 소문이 나서 아버지에게 해를 끼치게 될까봐 우려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께 민폐가 되는 자식이 되기는 싫었다. 직장에서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늘 조바심을 안고 살았다.

A씨의 과거 연인은 이런 점을 이용했다. 아웃팅 시 겪게 되는 차별과 편견을 역으로 이용해서 A씨를 괴롭혔다. A씨는 이후 다른 연인을 만났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직장명을 알려주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A씨에게는 리벤지 아웃팅이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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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이직, 개명, 휴대전화번호 변경. 리벤지 아웃팅을 당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일이다. 원치 않는 아웃팅으로 각종 불이익을 겪게 되고 더 큰 리벤지 아웃팅을 당하지 않기 위해, 그 고리를 끊기 위해 피해자들은 짐을 싸서 거주지를 떠나고 다니던 직장을 잃어야 했다.

성소수자들은 연인을 찾기 위한 커뮤니티가 있다. 소규모 커뮤니티다보니 쉽게 아웃팅될 우려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B씨는 과거 연인이 살해 협박을 해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랬더니 B씨의 과거 연인은 경찰 조사를 받다가 B씨가 동성애자라고 밝혔다. 이어 성소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B씨의 실명을 언급하는 글을 게재했다. 해당 글을 보고 B씨의 성소수자 지인들이 걱정하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결국 B씨는 휴대전화 번호를 변경하고, 이사를 했고 이직을 했다. 또 과거 연인과 함께 알던 모든 사람들을 끊어냈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과거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자 지하철역 광고판에 C씨와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광고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C씨의 사진을 뿌릴 수도 있으니 다시 만날 것을 요구 당했다. 리벤지 아웃팅을 하면서 가족이 믿지 않을까봐 애정 행각하는 사진을 첨부해서 아웃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이렇듯 견디기 힘든 피해를 겪고 사람을 보는 기준이 바뀌었다. 한 피해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첫 번째 조건이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또 다른 피해자는 이런 일을 겪은 뒤 무조건 ‘온순한 성격’만 보게 됐다.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리벤지 아웃팅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흔하지 않은 일도 아니다. 정신적인 피해는 물론 직접적인 피해가 많음에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외부로 알리고 싶지 않은 성소수자들은 이 모든 일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법적 대응이 충분히 가능한 문제임에도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해 법적 대응을 껄끄러워 참는 피해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달리 방법이 없다. 도터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QUV) 부의장은 “연인 간 아웃팅이 사라지려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인식이 개선되는 수밖에 없다. 대학 내에서도 이런 행위들을 목격해왔지만 피해자가 원치 않을 경우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경찰을 찾든가 변호사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피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해야 하는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체 차원에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성소수자 친화 병원이나 관련 상담사를 연결해주는 일뿐이다. 리벤지 아웃팅 피해를 당한 이들은 문을 닫고 다시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꼭꼭 숨게 된다.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불이익이 있는 한 리벤지 아웃팅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다.

피해자들은 최대한 ‘안전 이별’할 것을 제안했다. 남녀 연인 간 이별 폭행이 심해지자 안전 이별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성소수자 연인 사이에서도 안전 이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들은 천천히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갑작스런 이별일수록 상대방이 리벤지 아웃팅 등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서로가 맞지 않음을 시간을 두고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웃팅 협박 등을 할 경우에는 그런 협박을 당할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 진심을 얘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은 최대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두려움을 드러낼수록 그것이 약점이 되고 상대방이 굴복시킬 요인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는 경찰에 신고를 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상대방이 연인이라고 아웃팅하더라도 부정하면서 신고를 감행하는 강경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잃을 게 많아 걱정된다는 태도보다는 ‘그까짓 거’라는 담담한 모습이 더 도움이 된다.

아웃팅으로 말미암은 불편한 시선이나 차별이 없었더라면 리벤지 아웃팅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아웃팅 자체가 무기가 될 수도 없었다. 양성애자인 D씨는 오늘도 고민한다. 과거 리벤지 아웃팅을 당했던 D씨는 최근 끌리는 동성이 있지만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아웃팅을 당할 바에 다른 이성을 찾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리벤지 아웃팅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좁혀버리는 것 같아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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