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경험한 것만 쓰는 소설가
  • 하은정 우먼센스에디터 /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webmaster@sisajournal-e.com)
  • 승인 2019.01.0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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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니 에르노는 사랑에 빠진 사람 특유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사진= 김민규
사진= 김민규

 

작가 아니 에르노는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감탄을 자아낼 만큼 불편한 아름다움. 그러던 그가 지금은 78세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때의 귀기는 없다. 그때의 모습은 소설 <단순한 열정>에 잘 보관되어 있다.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전면적으로 ‘픽션’을 거부하고 자신의 작품이 모두 허구가 아닌 사실적 기억에 의존하고 있음을 선언했다. 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못 박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읽는 일은 남다른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그에게 있어 ‘문학’이라는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썼던 그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만 쓰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하나의 순수한 자아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주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털어놓을 때조차 중성적이고 객관적인 문체를 쓰려고 한다.

그에게 자신의 개인사는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이 사회를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반영한 인물이기 때문이라서’다. 우리 하나하나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을 노출증 환자라고 말하는 남들의 의견에 확실하게 반대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는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터이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이 읽힐 기회가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 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 그러니까 어떤 글? 열세 살이나 어린 외국인 유부남과 불륜을 벌이면서 열정 속에서 헤어나지 못해 버둥거리는 자신을 철저하게 묘사한 글. 그는 <단순한 열정>에서 남들이라면 흑역사라며 이불을 걷어찼을 사랑 이야기를 가장 적확하게 묘사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뿐인가. 이후 당시에 쓴 일기를 또 발표한다. <탐닉>이라는 제목으로.

<단순한 열정>은 그 지나친 솔직함 때문에 출간되자마자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며 화제작이 되었다.

그가 1974년 처음 발표한 소설인 <빈 장롱>도 자전적인 소설이었고, 그에게 작가로서의 분명한 입지를 가져다준 소설 <남자의 자리>도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1984년에 발표한 이 소설로 그는 로 르노도 상을 수상했다.

전쟁 이후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다룬 <세월들>로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램 독자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다룬 <얼어붙은 여자>, 낙태 이야기를 다룬 <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을 이야기한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심지어 자신의 유방암을 소재로 한 <사진의 사용>까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누구도 그만큼 알 수는 없는 대상인 자신과 그주변을 치열하게 들여다보고 글로 써낸다. 그런 그의 업적은 2011년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인 <삶을 쓰다>를 갈리마르 총서에서 출간하는 형식으로 인정받는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총서에 들어간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상’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또 기묘한 형태로도 인정받았다. 그가 <단순한 열정>에 등장하는 남자와 헤어진 후 만난 또 다른 불륜의 상대, 서른세 살 어린 남자인 필립 빌랭이 철저하게 그의 방식을 답습해 쓴 소설 <포옹>이 출간된 것이다. 필립 빌랭이 아니 에르노에게서 가져온 것이 단순히 형식인지, 그 철학까지도 가져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포옹> 이후에도 발표하는 작품마다 아니 에르노의 또 다른 작품을 거울로 삼고 있거나 아니 에르노와의 이별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옛 애인을 소재로 삼고 있을뿐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치열하게 탐구했던 아니 에르노를 계승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싶다.

글쓴이 박사

문화 칼럼니스트. 현재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경북교통방송의 <스튜디오1035>에서 책을 소개하는 중이며, 매달 북 낭독회 ‘책 듣는 밤’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 백서> <나의 빈칸 책> 등이 있다.

 

하은정 우먼센스에디터 /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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