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원 승인·신청 유치원 100곳 이상…“학부모 몰래 원장들이 폐원 신청해”
학부모들 “단순 국공립 유치원 증설은 실질적 대안 아냐” 지적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유아 학부모 지원금 공립·사립 동등 지원 등을 요구하며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이 유치원 버스로 광화문광장 주변을 돌자 경찰들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유아 학부모 지원금 공립·사립 동등 지원 등을 요구하며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이 유치원 버스로 광화문광장 주변을 돌자 경찰들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국에서 폐원을 승인 받거나 신청·협의 중인 유치원이 100곳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치원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공립 유치원 증설을 대안으로 내놨지만, 현장에선 기존과 다를 게 없는 안일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5시 30분을 기준으로 학부모와 폐원을 협의 중인 유치원이 94곳, 지역교육청에 폐원 신청을 한 유치원이 8곳, 폐원 승인을 받은 유치원이 6곳으로 파악됐다고 지난 2일 밝혔다.

교육부는 폐원을 검토 중인 유치원에는 학부모 3분의 2가 동의해야 한다는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치원 측이 일방적으로 폐원을 고수하면 실질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어 학부모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유치원에 6세 아이를 맡겨온 A씨(35)는 지난해 11월 유치원 측으로부터 갑작스럽게 폐원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통보받았다. 재정상 어려움이 유치원에서 전한 폐원 신청 이유였다.

A씨는 “만약 폐원이 확정된다면 당장 다음 학기부터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며 “현재까지 도봉구에만 3곳의 유치원이 폐원 예정이라 정원을 채울 곳이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유치원생 자녀를 둔 B씨(36)도 지난해 10월 말에 폐원 소식을 통보받았다. 유치원의 통보를 받기 불과 며칠 전, 자녀가 소풍까지 다녀온 터라 B씨는 더욱 황당했다. 유치원 측이 폐원 통보를 하면서 제시한 이유가 시설노후와 인원모집 어려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B씨는 “지금껏 유치원 시설에 문제가 없었고 인원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B씨는 “학부모들의 동의도 없이 페원 통과가 됐다고 하는데 원장이 이미 담당 행정지원과에 학부모 몰래 폐원 신청을 접수해놓고 폐원을 통보했다”며 “요즘 유치원 비리 감사로 학부모 몰래 폐원 진행하는 사립유치원 원장이 많을 거라고 하더니 진짜 당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사립유치원 폐원에 대응해 폐원 지역에 공립유치원을 먼저 증설하고 폐원하는 유치원의 원아 수만큼 공립유치원 정원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 대책에도 현장 반응은 미온적이다. 공립유치원을 증설한다 해도 사립유치원 폐원으로 더 늘어나게 될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대표는 “국공립을 몇 개 늘리는 건 당장 폐원 통보를 받은 학부모들에게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없다”며 “국공립 증설은 새로운 대책이 아니라 이미 계속해오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대표는 “100군데가 넘게 폐원을 한다면 폐원 유치원이 있는 지역 중심으로 국공립유치원이 증설돼야 하는데 정부의 공급은 초등학교 유휴교실 중심이다”라며 “폐원 유치원으로 진통을 겪는 곳은 대체로 유휴교실이 없다. 반면 유휴교실이 있는 지역은 영유아들도 적어서 폐원 유치원 위기 지역이 아니다. 결국 정부 공급과 학부모들의 수요가 미스매치 되는 결과”라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강경책으로만 밀고 나갈 게 아니라 사립유치원을 대화 테이블로 유도해 실질적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정부는 강경일변도의 밀어붙이기만 할 게 아니라 75%(원아수 기준)에 달하는 사립유치원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준비할 시간과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며 “지금처럼 계속된 마찰로 갈등이 장기화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들과 원아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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