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아닌 한진 지분 8.03% 매입
한진 감사 임기 올해 3월로 끝나
감사 확보 시 조양호 회장 전방위 압박 가능

그래프=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프=조현경 디자이너.

지배구조개선펀드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와 한진그룹의 공방전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경영활동 감시와 견제 목적으로 지난해 한진칼 지분을 획득한 KCGI가 이번엔 한진칼 주력 계열사인 한진 지분을 사들이면서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단기차입금 증대라는 카드로 한진칼 경영권 방어에 주력했던 한진그룹으로선 허를 찔리게 됐다.

KCGI의 한진 지분 확보 배경에는 감사 자리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진의 현 상근감사는 올해 3월로 임기를 마친다. KCGI가 한진의 감사직을 차지하게 될 경우 한진 뿐만 아니라 한진 등기임원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양측 모두 확실한 우세가 없는 만큼 소액주주와 외국인, 기관들의 표심잡기에 따라 승기가 정해질 전망이다.   

◇ 허찌른 KCGI, 한진칼 이어 한진으로 전선 넓혀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CGI가 출자한 특수목적법인(SPC) 엔케이앤코홀딩스 외 특별관계자는 한진 지분 8.03%(96만2133주)를 신규 취득했다고 지난 3일 공시했다. 지난해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 10.08%를 사들인데 이어 한진으로 전선을 확대한 것이다.

이번 지분 확보는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KCGI가 사들인 한진 지분은 지난해 12월 26일에 이뤄졌다. 이는 주주명부 폐쇄 기간 직전이다. 사실상 올해 주주총회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는 시점까지 기다렸다가 주식을 매수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 보고를 곧바로 하지 않고 해를 넘어가기를 기다렸다가 이달 3일 공시했다. 한진그룹이 지분 확보, 차입금 확대 등 손을 쓰지 못하게 한 셈이다.

앞서 한진그룹은 KCGI의 한진칼 지분 확보에 대응해 한진칼의 단기 차입금을 1600억원 늘려 자산을 2조원대로 불린 바 있다. 한진칼은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차입금을 늘렸다고는 했지만, 업계에서는 감사직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으로 보고있다. 상법상 자산 2조원을 넘길 경우 상근감사가 아닌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경우 합산 ‘3%룰’(감사 선임 시 지배주주가 의결권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토록 제한한 규정)이 아닌 일반 3%룰이 적용된다.

즉, 상근감사 선임 시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모두 3%로 묶이는 데 반해 감사위원회 설치에 따른 사외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1인당 3%룰이 적용된다. 결과적으로 한진칼 대주주 일가의 의결권 지분은 기존 3%에서 17%대 수준으로 늘어나게 돼 대주주가 선호하는 감사위원 선임에 보다 더 유리해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감사위원회 의무 설치 여부는 개별 재무재표 기준 최근 사업연도 말 자산규모가 2조원이 넘느냐 넘지 않느냐로 정해진다”며 “KCGI가 해를 넘어 공시한 것은 한진칼의 사례처럼 자산을 2조원으로 늘려 감사위원회 설치를 하려고 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3분기 보고서 기준 한진의 자산은 1조9185억원 수준이다.

◇ 한진 감사 교체가 주요 목적···결과는 표대결 가봐야

이같은 KCGI의 움직임에는 한진의 상근 감사직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한진의 상근 감사는 올해 3월 17일 임기가 만료된다. 감사는 해당 회사의 회계감독, 경영진 업무집행 감독, 부정 행위 적발 및 예방, 리스크 관리 등 업무를 한다. 만일 KCGI 측이 제안한 감사인이 선임된다면 한진의 대표인 조양호 회장과 한진그룹을 보다 더 강도높게 압박할 수 있다.

KCGI의 한진 지분 확보 방식에서 이러한 의도가 드러난다. KCGI는 하나의 SPC가 8.03% 지분을 다 사들인 것이 아니라 3개(엔케이앤코홀딩스 3.19%, 타코마앤코홀딩스 3.85%, 그레이스앤그레이스 0.99%)로 나눠 지분을 확보했다. 이는 감사 선임에 있어 3%룰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엔케이앤코홀딩스만 8.03% 지분을 전량 확보하면 감사 선임에 있어 3% 의결권만을 행사할 수 있는데 3개로 나눠 지분을 취득하면서 최대 6.99%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상법상 2대주주가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 등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에 합산 3%룰은 2대주주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양측의 지분이 압도적이지 않아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할 전망이다. 한진 최대주주와 2대주주 KCGI의 지분을 제외하면 국민연금이 7.41%, 쿼드자산운용이 6.49%, 조선내화 1.53%의 지분을 들고 있다. 나머지 43% 가량은 일반 개인 주주와 외국인 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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