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면 상권 무너지는데 서울시는 해결방안 없어

“아파트 단지 옆에 세운상가 하나 세워두면 그게 도시재생인가”

철거된 업체에 '단결 투쟁'등이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사진=최창원 기자
철거된 업체에 '단결 투쟁'등이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사진=최창원 기자

3일 아침 8시 30분 서울 중구 세운상가 인근 골목엔 ‘강제 철거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 옆으로는 ‘철거’라고 적힌 철문이 보였다. 좀 더 들어가자 대부분 가게에 철거 안내가 붙어 있었다. 골목 안에서 공구상인 이모씨를 만났다. 30년 경력의 이모씨는 “이제 우리가 철거될 차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시는 지난 2006년 도시재정비촉진특별법을 근거로 세운상가 일대 43만8385㎡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하지만 상인들의 반대와 문화재위원회 심의 탈락으로 사업은 연기돼 왔다. 이에 서울시는 2013년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발표했다. 철거가 아닌 주상복합단지 건설 등 ‘도시재생’이라는 방향을 제시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것이다. 그 결과 빠르면 2023년, 해당 지역엔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주 대책 마련을 외치는 스티커가 전봇대에 붙어 있다. /사진=최창원 기자
이주 대책 마련을 외치는 스티커가 전봇대에 붙어 있다. /사진=최창원 기자

◇ 시행사, 상인들에게 손해배상 청구…서울시 “민사소송이라 관리할 수 없어”

재정비촉진계획의 일환으로 지난해 10월 관리처분계획인가가 고시됐다. 이후 ‘세운 3-1구역’ 대부분의 업체가 한 두 달 사이에 철거됐다. 상인들은 시행사가 3-1구역 세입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관리처분계획인가에 명시된 기존 건축물 철거 예정 시기는 1년 이내인데, 빠르게 철거 압박을 시작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업사 관계자는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철거를 끝까지 반대한 상인들에게는 최대 5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이 진행됐다”며 “(관리처분계획)허가가 떨어진 후 상인들이 할 수 있는 건 철거 이전 혹은 폐업뿐이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리슨투더시티 관계자에 따르면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떨어진 후 두 달 사이에 3-1구역 400여개 업체 중 대부분은 이전했고, 10%는 이전에 어려움을 느껴 폐업했다.

상인들은 서울시에 도움을 청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울시는 시행사의 손해배상 청구를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시행사의 민사소송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사소송 내용이라 손해배상 청구 취하를 요청할 수 없었다”며 “3-1구역 내 업체 소유권이 시행사에 넘어간 후라 손해배상 자제를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시행사인 한호건설 측에도 해당 내용을 문의했으나 답변받지 못했다.

소유권 이전 과정에 대해서도 상인들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시행사와 건물주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고 세입자인 상인들은 철거 관련 내용을 기사를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가공업체 대표는 “기사를 통해 세운 상가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마땅한 이전 지역을 찾지 못해 임시로 이전했다”고 말했다.

한편 대부분의 상인은 보상금 관련 질문에 대답을 꺼렸다. 대화를 하다가도 보상금이 언급되면 다급히 인터뷰를 끝냈다. 서울시에 보상금 지급 내용을 문의하자 서울시 관계자는 “시행사 측과 세입자 비상대책위원회 사이에 금액 합의가 이뤄졌고, 해당 금액으로 지원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상인은 세입자 비대위 내부에서도 갈등이 있었고, 합의를 원하는 수뇌부가 시청과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사 관계자는 “상인들끼리도 의견이 달랐고, 비대위 내부에서도 의견이 달랐다”며 “합의를 원하는 측이 시행사 및 서울 시청과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흩어지면 상권 무너지는데 서울시는 “법률상 어쩔 수 없어”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 따르면 세운상가 일대 지역에선 1만개 업체에서 5만여명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60년이 넘게 지켜져 온 상권이 무너지자 상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전업사를 운영하는 최모씨는 “철거된 업체들이 파주・구리・종로 등으로 다 흩어졌다”며 “생태계가 흩어지면 우리는 동네 전파상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업체들도 물건을 만들려면 다들 모여있는 게 좋고, 손님들도 업체들이 모여있어 이 지역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상인들과 같은 반응이다. 작품에 필요한 전구를 사러 왔다는 대학원생 윤모씨는 “세운상가는 다시 살리겠다며 난리쳐놓고, 정작 3D 프린팅에 필요한 재료 판매업체들은 철거시킨 것”이라며 “서울시가 말하는 도시재생은 기존 상권 파괴로 생겨난 아파트 단지 옆에 세운상가만 떡하니 남아있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서울시는 법률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에 집단 이전 등 관련 내용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법에선 관련 내용이 없어 개인이 따로 이전할 지역을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도심 제조업의 겨울이 생명의 꽃이 피어나는 혁신의 봄으로 변할 것”이라며 “도심지역 내 흩어져 있는 영세 제조업체와 소공인들을 한 곳에 모아 산업시너지를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사 반대 현수막이 골목에 걸려있다. /사진=최창원 기자
결사 반대 현수막이 골목에 걸려있다. /사진=최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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