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학교 특성상 성소수자 색출 조사 및 혐오표현 만연… 청소년 성소수자 대화 창구 더 많아져야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어른에게는 탈출구가 있다. 공적인 곳에서는 공적인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숨기고 싶은 내밀한 것은 업무 바깥의 사적 영역에 두면 된다. 어른들이 공과 사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분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0대는 다르다. 학교라는 닫힌 세계의 정문을 빠져나가면, 학원 혹은 가정이라는 닫힌 세계에 또다시 갇힌다. 휴대폰 소액결제도 불가능하다. ‘개인’ 대신 학생이라는 신분으로만 존재한다. 이처럼 사(私)의 세계를 구축할 여지가 적은 10대는,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마음껏 펼쳐보일 곳이 없어서 답답하다. 이들이 성인이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이 때문이다.

성소수자 중에서도 10대 성소수자만이 갖고 있는 어려움은 분명 있다. 10대는 취약하다. 스스로는 강하나, 어른들이 그들의 세계를 함부로 만지려고 해서 그렇다. 그들은 아직 어려서 오염되기 쉽다고 여겨진다. 그동안 미디어에서 10대의 동성애를 패션으로 진단하고, 이를 ‘물든다’거나 ‘번진다’고 표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각각 서울, 대전, 울산에 거주 중인 10대 성소수자 3명을 인터뷰했다. 모두 익명을 요구한 관계로 A, B, C씨로 적는다.​​ A와 B는 2019년 새해를 맞아 20살이 되었고, C씨는 18살이 되었다.

◇ 학교서 버젓이 이뤄지는 이반검열… 성관계 여부, 상대 성별 조사 이뤄져

​이반검열이란 말 그대로 이반(동성애자)을 검열하는 것이다. 학교에 동성애자가 다니고 있는지 색출하겠다는 목적을 갖는다. 주변에 동성애자로 의심 혹은 확신이 가는 친구가 있으면 이를 적어내도록 하는 식이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청소년 응답자의 80.0%는 선생님으로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들은 적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실제 이반검열이 있다는 응답도 4.5%였다. C씨가 다니는 학교는 저 4.5%에 속하는 곳이었다.

​C  중학교 때는 없었고,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개인에 대한 여러가지 문항에 답해서 선생님에게 제출한 적이 있었다. 성관계를 한 적이 있는지, 했다면 어떤 성별과 했는지, 성관계를 한 친구가 있는지, 동성애를 하는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는 문항이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 교과서에서 다루나 깊이 없고 단편적… 호모포비아적 발언하는 선생님도

​성소수자 관련 내용은 교과서에 실린다. 고등학교 교과목인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는 성소수자와 관련해 인권 존중을 독려하는 내용이 실려있긴 하지만 비중이 적고, 깊이도 얕다는 게 이들 주장이었다. 차라리 저렇게 배울 바에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른바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A  교육은 필요하다. 과거 아웃팅 당했을 때 아쉬웠던 게 “당신이 틀리고 내가 옳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었다. 동성애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교육과정들이 구체화되었으면 좋겠다.

C  교과서에 동성애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인식을 확립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내용은 없다. 중학교 도덕 시간과 가정 시간에 올바른 이성 교제와 성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동성애는 올바르지 못하다'라는 내용이 나오는 부분은 있었다. 선생님마다 다르긴 했지만, 저희 반에 수업 들어오시던 한 선생님이 “동성애는 성도착증이다, 동성애자들은 싹을 뽑아버려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B  오히려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상처받을 것 같아서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어차피 교육을 해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 아웃팅, 언제·어떻게 알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10대 아웃팅이 위험한 이유는 피난처가 없기 때문이다. 성인에겐 있는 퇴사, 휴학이라는 일시 후퇴의 기회가 없는 10대에게 아웃팅이란 가학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성소수자임을 공개함’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4.5%에 달했다. 아울러 교사로부터 ‘내가 성소수자임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겠다고 협박’ 당한 비율도 1.5%였다. 친구로부터 협박당한 경우는 13.0%였다. 아웃팅의 위험은 이들로하여금 자꾸만 입을 닫게한다.

A  ​과거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우리가 사귀는 걸 알고 내가 다니던 체육관 관장에게 이를 알렸다. 관장이 “걔가 왜 좋아? 뭐 때문에 좋아해?” 이런식으로 묻더라. 여자친구 어머님도 “네가 네 부모한테 알리지 않으면 내가 알리겠다”고 해서 그때 엄마한테 처음으로 말 했다. 이전부터 여자친구가 집에 자주 놀러왔어서 엄마는 벌써 눈치 채고 있더라.

B  나한테 직접 한 말은 아니었는데,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좋아할거면 남자를 좋아하지 왜 여자를 좋아하냐”는 식으로 대화를 해서 괜히 상처받았다. 그 친구들에게 다시 물어보고 싶은 게, 과거부터 계속해서 이성애를 주입하고 있는 사회에 사는 네가 과연 진짜 이성애자라고 확실할 수 있겠느냐고.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경우도 있지 않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모임에서도 이전까지 계속 남자만 좋아하다가, 여자친구를 만난 언니도 있다. ​

◇ 휴대폰 앱 통해 부모님으로부터 감시받기도

이동통신사의 학교폭력 방지 서비스 탓에 원치 않게 가족에게 성정체성을 알리게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 한 이통사 청소년안심팩의 경우, 부모가 설정한 키워드(욕설 등)가 자녀가 주고받는 카톡 등 메시지에서 감지되면 곧바로 부모에게 알림이 간다. 대화 중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단어가 오갈 경우, 이같은 내용이 그대로 부모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해당 서비스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부가서비스를 해지해야 하는 등 미성년자인 자녀가 쉽게 서비스를 중단할 수 없어, 의도치않게 정체성이 노출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A  이 앱(App)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나와서 담배나 술, 이런 단어가 들어가기만해도 부모에게 문자가 간다. 이전 여자친구의 부모님도 이거 때문에 (여자친구가 성소수자인 것을) 알게 된 거다. 부모님이 휴대폰을 가져가서 둘이 나눈 메시지를 본 것이다. 그만큼 검열을 당하기 쉬운거다. 부모님들은 “내가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고 하는데, 이것도 못해 너는?” 이런 기제로 이용하니까. 참 다양하게, 많이 힘들다.

​◇ 여기 또다른 자리, 무성애의 공간

​동성애는 유성애다. 무언가 있다면, 무언가 없는 상황도 존재한다. 단어 정리를 우선 해야한다. 퀴어를 가리키는 LGBTAI(Lesbian·Gay·Bisexual·Transgender·Asexual·Intersexual)​중 A가 이 무성애(에이섹슈얼)를 뜻한다. 무성애도 스펙트럼이 넓은데, 이를 아우르는 단어가 에이엄브렐라(A-umbrella)다. 앞서 등장한 A씨는 인터뷰에 앞서 자신을 ‘콰이로맨틱 에이고섹슈얼’이라고 소개했다. 콰이로맨틱은 성적 끌림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거나, 구분하지 않으려는 성향이다. 에이고섹슈얼은 이른바 자기부재(自己不在)성애로 특정한 대상(사람, 사물, 상황 등)에 대해 성적욕구나 성적인 판타지를 품으나, 그런 생각이 자신이 곧 행위자가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A씨는 많은 사람이 무성애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A  나도 나를 잘 몰랐다. 처음에는 얘도 좋고 쟤도 좋아서 스스로 범성애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친구로서 좋은건지, 연애 하고싶은 낭만적인 감정으로 끌리는건지 구분을 잘 못하겠더라. 좀 더 알아본 후에 스스로를 콰이로맨틱으로 정체화할 수 있었다. ​무성애라는 정체성이 있는데, 그동안 이걸 몰랐던 거다. 이런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 무성애가 더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몰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애나 섹스가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에이섹슈얼도 연애할 수 있지만 연인 관계라는 게 꼭 필요하다거나,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연애, 연인은 유성애 중심적인 단어라서 무성애에서는 그것 대신 큐피알(QPR·Queerplatonic Relationship), 파트너라는 단어를 쓴다. QPR은 단짝일 수도 있고,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명확한 정의가 없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셜록이 에이섹슈얼로 해석되기도 한다.

​◇ “모두 모여 이야기할 곳이 필요하다”

C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가 굉장히 제한적이고 소규모라는 점이 아쉽다. 그런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들이 이런 고민을 나누거나 해결하기 더욱 수월해질 것 같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에. 

A  대부분의 퀴어 행사가 저녁에 하거나 술을 마시니까, 청소년이 참여하기 힘들다. 띵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독서실에서 외출도 찍지 않고 나가기도 했다. 내가 이 모임, 이 장소에 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안전한 장소라는 느낌 때문에 자주 갔다.

띵동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 센터다. 위기상황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한다. 매월 2회 토요일마다 밥을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가출 청소년을 위해 생리대, 양말 등 필수품을 넣은 키트(kit)를 만들기도 했다. 낮잠방과 샤워실도 운영 중이다.

​다시 A  띵동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다. 나는 아웃팅을 당했던 사람이고, 그런 트라우마를 (띵동이 없었다면) 아마 떨쳐내지 못한 채로 살지 않았을까. 이런 커뮤니티가 없다면 막연히 ‘어딘가에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겠지’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면 이들이 나와 정말 가까이에 살고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하철, 버스 한 번만 타고 가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사람인데. 그런 막연함을 이런 모임이 없애줬다.

B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제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절 피하는 것 같다는 식의 내용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을 때 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돌파구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거다. 

◇ 20대를 맞이하며

A  우선 대학 기숙사에 붙고 싶다. 집에서도 자유로울꺼고, 내가 가고싶은 퀴어 행사도 막 가고. 전국 퀴퍼 다 도는 게 목표다. 프라이드가 가득한 새해를 보내고 싶다. 먼 미래에는 독일에서 살고 싶다. 독일은 2019년 1월 1일부터 헌법에서 제 3의 성을 인정을 했다.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그런 나라에서 퀴어 공동체를 이뤄 살고싶다.

B  (성인이 되면)더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 같이 클럽도 다니고. 대학교에서는 굳이 성정체성을 밝히지 않을 것 같다. 저 때문에 불편한 사람이 생기는 걸 원치 않는다. 연인이 생긴다면 함께 대만 여행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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