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노동자들 “원청 경영책임자·관련 공무원 처벌 하한형 필요…상시업무 직고용도 논의 없어”

지난달 12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2차 범국민 추모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임시국회서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원청기업 경영주와 관련 공무원 처벌 하한형이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급 금지 대상도 제한적으로 확대돼 정작 고(故) 김용균씨가 맡았던 발전 업무는 도급 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지난해 12월 27일 마지막 본회의서 여야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 합의했다. 개정안은 유해·위험작업의 도급 전면금지, 사업장 내 근로자 안전에 대한 원청업체 책임 확대,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 명령권 신설, 안전 및 보건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 있다.

개정안은 기존보다 노동자 안전권과 위험 업무의 외주화를 막는 차원에서 개선됐다. 그러나 현장의 산업 노동자들은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개정안이 도급 급지 대상을 제한적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위험 업무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도금작업, 수은, 납, 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 작업, 허가 대상 물질의 제조·사용 작업의 유해·위험성을 고려해 사내 도급을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이를 위반하면 10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토록 했다. 다만 일시적·간헐적 작업, 수급인이 보유한 기술이 도급인의 사업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 승인을 받아 예외적으로 도급을 허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지난달 11일 발전 업무 정비로 사망한 하청노동자 용균씨의 업무는 배제됐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정비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업무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처리가 가능하도록 영향을 미쳤던 김용균씨의 업무는 도급 금지 대상에서 빠졌다”며 “정부가 시행령이나 고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서 발전 정비 업무의 도급을 금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법안에 직접적 명시가 돼있지 않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 간사는 “국민의 생명, 안전과 관련된 상시 지속 업무는 원청의 직접 고용이 원칙이다”며 “발전 업무는 국가 필수 유지 업무에 이미 지정됐다. 이런 부분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8년 발전 5사와 노동부는 한국동서발전 호남화력발전처의 필수유지업무에 대해 발전설비의 운전 업무, 발전설비 운전 기술지원 업무, 발전설비 점검 및 정비 업무 등이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노동부는 전기사업의 필수유지업무 중 화력발전소의 경우 중앙제어실 운전, 현장설비 운전, 환경화학설비 운전, 시운전, 도서내연 운전 등이 그 업무 범위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 현장 노동자들 “원청 경영책임자·관련 공무원 처벌 하한형 필요​법인 책임성 높여야 실효성 생긴다”


이번 개정안은 원청과 원청 경영자, 업무 관련 공무원에 대한 처벌의 하한형 규정도 마련하지 않았다. 현장 노동자들은 처벌의 상한선을 아무리 높여도 하한형을 두지 않으면 실효성이 낮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노동자의 산재사고에서 원청은 대부분 벌금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왔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한해 산업재해로 수백 명 이상의 노동자가 죽었지만 사업주가 구속 처벌 되는 경우는 1~2건에 불과하다”며 “원청 처벌의 하한형을 둔 법 규정을 마련해야 노동자 안전권을 실효성있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안전 및 보건 조치를 위반해 사람이 다치거나 죽은 경우 중간 관리자가 아닌 기업의 최고 경영자와 업무 관련 공무원도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며 “이들에게 처벌의 하한형을 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은 국회가 여전히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은 지난해 11월 고(故) 노회찬 의원과 박주민, 정동영 의원 등이 공동발의했다. 이 특별법안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가 이 법에 따른 안전조치의무 및 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며, 해당 법인에게도 벌금을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이 경우 기업 경영주와 업무 관련 공무원의 처벌에 대한 하한형도 포함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법안을 방치하고 있다.

안전 및 보건 보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거나 다친 기업에 대해 법인 처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명선 실장은 “한국은 대부분 산재 사고 시 법인이 아닌 개인에 책임을 물어왔기에 처벌 수준이 낮았다”며 “영국처럼 기업이 안전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경우 기업 책임과 처벌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을 범한 행위자에 대해 법인의 경영책임자 등이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사람의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 상의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한 경우 해당 법인의 전년도 연 매출액 또는 해당 기관의 전년도 수입액의 10분의 1의 범위에서 벌금을 가중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산재가 일어나기 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상시, 지속적 업무에 대한 원청의 직접 고용을 요구했다. 한국서부발전의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고도 외험 업무 외주화에 따른 비용절감과 책임 회피 구조가 만든 사고였다. 외주화로 2인1조 근무가 지켜지지 않았고 산재 책임은 원청이 아닌 하청이 져왔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산재가 일어난 후 처벌 강화보다 산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상시, 지속 업무는 원청이 직접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법안은 현재 발의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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