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신뢰 저하에 실적도 감소세…IB 출신 CEO도 주목

올 한해 증권사들은 좋은 소식보다는 좋지 못한 소식들이 더 많았다.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사태,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 논란에 이어 중국 에너지 회사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가 발생했다. 세 사건 모두 한국 자본시장의 민낯을 보여준 사례였다. 여기에 증권사들의 실적마저 하반기로 갈 수록 부진해 명예와 실리 모두 놓치게 됐다.

증권사들의 수장 교체 바람도 올해 특징적인 부분이었다. 12년 장수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나기도 했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용퇴한 대표들도 있었다. 이 자리를 채운 건 투자은행(IB) 전문가들이었다는 점도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이는 그만큼 증권사 내 IB 부문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위에서부터) 유령주식 사태로 물러난 구성훈 전 삼성증권 사장, 증선위 정례회의를 진행하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 새 CEO로 내정된 IB 출신 CEO들(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김성현 KB증권 부사장, 김병철 신한금융투자 사장) / 사진=연합뉴스, 각사
◇ 사상 초유의 유령주식 사태와 무차입 공매도 논란

올해 증권업계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른바 ‘유령주식 사태’다. 삼성증권의 한 직원은 올해 4월 우리사주 배당금 1000’원’을 1000’주’로 잘못 입력했다. 이로 인해 우리사주 계좌에 28억1000만주가 새로생겼다. 이는 이 회사 발행가능 주식 수를 30배 뛰어넘는 수치였다. 이 중 501만2000주가 증시 시장에서 실제 매도됐고 주가는 일순간 곤두박질쳤다. 존재하면 안되는 주식이 발생했고 거래된 것이다.

무차입 공매도 논란도 일었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지 않고 파는 것으로 한국은 증시 변동성을 키운다는 이유로 2008년 이후 금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증거금을 내고 주식을 빌려와 파는 차입 공매도만 허용된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은 올해 5월 30~31일 차입하지 않은 상장주식 156개 종목(401억원)에 대해 매도 주문을 냈다. 지난 5월 30일 82개 종목, 그 다음 날 74개 종목 등 이틀간 총 96개 종목(중복 종목 60개)에 대한 주문이 있었다. 시장별로는 코스피 13개 종목, 코스닥 83개 종목이다.

희대의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한국 증권업계의 시스템 문제로 번졌다. 이에 금융당국은 삼성증권에 6개월간 일부 영업정지와 1억원 과태료 부과, 전현직 임원 직무정지 및 해임권고(상당) 등을 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공매도 제한 위반 건으로 74억8800만원, 공매도 순보유잔고 보고 위반 건으로 1680만원이 각각 과태료를 받았다. 공매도 관련 과태료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그러나 자본시장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측면에서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신용평가 한 달만에 맞이한 중국 ABCP 부도사태


중국 기업의 ABCP 부도 사태도 올 한해 증권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다. 이 역시 각종 논란을 낳았다. 지난 5월 말 중국국저능원화공집단고분공사(China Energy Reserve and Chemicals Group·CERCG)가 보증한 자회사 채무의 만기내 원금상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크로스디폴트(Cross Default·동반 채무불이행) 조항에 따라 국내 증권사와 운용사들이 참여한 CERCG가 지급보증한 달러화 채권의 ABCP도 채무불이행 위험이 발생했다.

채권 디폴트는 일어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디폴트가 되는 과정과 시간이 문제였다. 당초 이 ABCP는 신용등급으로 A2 등급을 받아 안전성이 높게 평가됐다. 하지만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C등급(상환능력 불투명)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감지하지 못한 신용평가사와 주관사를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ABCP 부도로 국내 증권사, 운용사들의 손실액은 1000억원이 넘었고 이 ABCP가 포함된 펀드의 투자자들도 손실을 보게 됐다.

아직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차증권과 BNK투자증권은 주관사 격인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증권 등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등의 소를 제기한 상태다. 신영증권과 유안타증권은 현대차증권 현대차증권이 ABCP 투자 물량을 다시 사들이기로 사전에 합의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민사 소송을 걸었다. 반면 현대차증권은 실무자간 메신저로 수요 협의 차원에서 논의한 것이기 때문에 예약매매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 상고하저 실적·CEO 교체바람도 특징적

올해 증권사들은 상반기에는 증시 호황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서면서 실적에 대한 부진이 이어졌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3분기 증권·선물회사 영업실적’에 따르면 증권사 55곳의 당기순이익은 957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 분기 1조2458억원 대비 2882억원(23.1%) 줄어든 수치다. 초대형IB만 떼 놓고 보더라도 미래에셋대우는 올해 3분기 순이익이 전분기 대비 43.1% 급락했고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등도 전분기 대비 실적이 줄었다. 여기에 올해 4분기에도 주식 시장 침체로 실적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 증권업종의 보릿고개가 예상되는 가운데 CEO 교체 움직임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토러스증권 등이 연말 인사를 통해 수장을 바꿨다. 한국투자증권은 12년 최장수 CEO인 유상호 부회장 대신 정일문 사장을 앉혔다. KB증권은 증권사 최초의 여성CEO인 박정림 부행장과 김성현 부사장을 자리에 앉혔다. 신한금융투자 역시 김병철 사장을 새 대표로 내정했다. 토러스증권은 신정호 전 메리츠종금증권 IB 사업본부장을 대표 자리에 임명했다.

특징적인 점은 박 부행장을 제외하면 이들 모두 IB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는 결국 증권사들이 IB 부문을 키우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증권사 수익구조가 브로커리지 중심에서 IB 중심으로 바뀌고 있고 해외 시장 공략 차원에서도 IB 부문 역량이 필요한 까닭이다. 금융당국 역시 초대형IB를 도입해 IB 부문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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