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예외조치 인정돼야 실질 공사 가능…북미관계 개선이 관건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철도 노선표. / 자료=국토교통부,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남북은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정상 간 합의 사항인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 연내 개최를 이행하기 위해 26일 북측 개성 판문역에서 착공식을 개최했다. 대북제재 위반 논란 등으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은 다소 지연된 모습을 보였지만 남북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경제협력을 재확인했다.

그동안 정부는 착공식을 진행하기 위해 북측과 일정 등을 조율하는 동시에 미국 측과 대북제재 면제 관련 논의를 진행해왔다. 착공식에 필요한 금속류 물자 등의 반출과 열차 통행을 위해서는 미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반영해 이번 착공식이 실제 공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착공이 아니라 ‘착수’라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착공식 기념사를 통해 “서울역과 이곳 판문점역까지는 불과 74㎞”라며 “70년 가까이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우리는 또 이렇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우리는 철도와 도로의 연결이 단순한 물리적 결합, 그 이상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철도와 도로를 통해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고, 문화·체육·관광·산림·보건 등 보다 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이 촉진될 것”이라며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되어 우리의 경제지평을 대륙으로 넓혀줄 것이다. 남과 북이 힘을 합친다면 세계 무대에서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윤혁 북한 철도성 부상은 “남의 눈치를 보며 휘청거려서는 어느 때 가서도 민족이 원하는 통일연방을 실현할 수 없다”며 “위풍과 역풍에 흔들림 없이 똑바로 나아가야 할 때다. 북남 철도·도로 사업의 성과는 우리 온 겨레의 정신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김 부상은 이번 착공식이 “세계 앞에 민족의 힘과 통일 의지를 과시하는 뜻 깊은 계기”라며 “동북아·유라시아의 공동 번영, 나아가 전 세계 공동 번영을 적극 추동하는 새로운 동력이 출현하는 역사적인 시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부상의 발언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협력사업이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오찬에서 “오늘 착공식을 계기로 중단되지 않고 남북 철도·도로 연결이 진행돼 철도, 도로를 타고 평양, 신의주, 중국과 몽골, 러시아, 유럽까지 갈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남북은 이날 오전 10시 북측 판문점에서 착공식 공식행사를 진행했다. 남측에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을 단장으로 방강수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김윤혁 철도성부상,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아르미다 알리샤바나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UNESCAP) 사무총장과 옌 허시앙 중국 국가철로국 차관보, 블라디미르 토카레프 러시아 교통부 차관, 양구그 소드바타르 몽골 도로교통개발부 장관, 강볼드 곰보도르지 몽골 철도공사 부사장 등 국제기구와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관련국 관계자도 참석했다.

남측 참석자는 이날 오전 6시45분쯤 총 9량으로 편성된 특별열차를 타고 서울역을 출발했다. 열차는 도라산역을 지난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뒤 판문역에 도착했다. 착공식은 북측 취주악단 공연을 시작으로 남과 북 대표의 축사, 침목 서명식, 궤도 체결식, 도로표지판 제막식, 폐식 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유진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남북 철도·도로 협력사업 관련 향후 계획에 대해 “그동안 조사의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 추가적인 정밀조사를 벌이고 그에 기반해 향후 본격적인 공사를 위한 사전 준비를 지속할 것”이라며 “북측과 현대화 수준과 사업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여·야 남북 철도 착공식 놓고 엇갈린 반응 내놓아


여야는 이날 북측 개성 판문점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열린 것에 대해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은 “한반도 공동번영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실체가 없는 착공식”이라고 밝혔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남북 간 철도 연결은 한반도의 공동번영은 물론 동북아의 상생번영을 열어나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획기적으로 확장시키는 주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이번 착공식에는 남북 주요 인사를 비롯해, UN 등 국제기구 대표들과 중국, 러시아, 몽골 등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관련국 인사들도 함께한다”며 “이는 중국, 러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뻗어나갈 우리 철도의 전망을 밝혀주는 것으로 더욱 뜻깊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 화해와 교류의 역사적 장면에 가슴이 차오름을 금할 수 없다”며 “바른미래당은 남북평화의 길이 성공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번 남북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계리로 제재의 빗장이 녹기 시작했다”며 “늦지 않게 대화와 만남의 물꼬가 터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다만 자유한국당은 이번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실체 없는 착공식이라고 평가하며 지지율이 데드크로스(직무 수행의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선 현상)를 찍은 문 대통령의 ‘여론조작용 착공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착공식이라 불리는 착수식에 정치인들이 많이 갔다. 자유한국당은 가지 않았다. 실체가 없는 착공식이기 때문”이라며 “남북 어디에서도 공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공사 범위와 추계는 고사하고 이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될지 어림도 잡기 어려운, 사업계획도 없는 착공식이다. 법적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 남북 철도·도로 사업, ‘대북제재 예외조치 완화’가 관건
 
남북은 이번 철도·도로 착공식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 의지와 경제 협력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필수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이상 공사를 시작할 수도 없다는 점이 한계로 남았다.

정부는 남북이 한 차례 공동조사를 진행했지만 그 결과 분석에 따라 필요한 구간에 대한 추가 공동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한 남북 간 철도·도로 협력 로드맵이 완성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남북 간 협의 과정에서 북측의 희망사항과 남측의 필요성 등을 조율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현미 장관은 남북 철도·도로 공사는 1~2년 내 시작되기 어려울 것이란 입장을 내놓았다. 김 장관은 이날 착공식 참석을 위해 탑승한 특별열차에서 “(착공식 이후에) 실태조사를 더 해봐야 한다”며 “실제 공사 전까지 할 게 굉장히 많다. 설계만 해도 1~년이 걸린다. 설계 같은 것부터 먼저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도 남측 사업 의지를 확인한 만큼 남북 철도·도로 사업에 속도를 내기 보다는 최대한 내부 선전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오는 2020년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는데, 그동안 정주년(0 또는 5로 꺾어지는 해)에 대대적인 경축 행사를 벌여왔다. 또 2020년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 마지막해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2020년 경제성과를 내부적으로 과시해야하는 만큼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에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변수는 결국 미국이다. 북미 관계가 어찌됐건 대북제재가 완화돼야 남북도 철도·도로 착공식을 넘은 다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며 “북미 관계가 개선된 이후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가 비핵화 조치 등 진전이 이뤄지고 그것을 전제로 대북제재를 완화시키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이 평론가는 “북한에서는 착공식 이후 다음 조치 진전 여부 등을 놓고 우리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지금 북미 또는 남북 관계가 큰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고, 대북제재 완화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착공식 이후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6일 판문역에서 열린 '동·서해선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서 참석자들이 도로 표지판 제막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 제공)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