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연착륙 합의’ 여전히 논란…정부, 내년 2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개편 법개정 추진

 

2018년이 막을 내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았던 올해는 유독 정책이슈들이 많았다. 북핵 위기 상황 속에서 극적으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국내외에서 가장 큰 이슈로 주목받았다. 경제 관련 정책 이슈도 유독 많았던 한해였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등 주요 정책 공약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담론이 격렬해진 가운데, 국민 체감도가 큰 노동·교육 관련 이슈를 둘러싸고도 찬반 여론이 들끓었다. 시사저널e는 올 한해 국민적 관심이 가장 컸던 정책이슈 10가지를 되돌아보고 현재 상황과 향후 과제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주 52시간’ 근로단축 제도가 올해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기업을 중심으로 시행되면서 관련 이슈들도 2018년 한해를 장식했다. 기업들의 업무량 변동 등에 대한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애초 전망처럼 개별 기업들은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이 짧아 업무량의 변동으로 집중근로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산업 현장 혼란을 보완시켜주기 위해 올해 12월말로 예정돼 있던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처벌 유예 기간을 내년 3월31일로 연장하기로 했다. 다만 경영·​노동계가 서로 각기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탄력근로제 연착륙 합의가 관건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탄력근로제는 단위 기간 내 근무시간을 조정해 주당 근로시간 평균치를 법정 한도인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제도다. 특정 기간에 업무가 몰리는 사업장에서 주로 활용된다. 


정부는 내년 2월까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개편을 담은 법 개정을 추진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은 최대 3개월이다. 노사 합의로 3개월 이내 기간에서 평균 법정근로시간인 주 52시간을 맞추면 된다. 현행법상 노사 합의로 최장 3개월까지 탄력적 근로를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경영계는 6개월에서 1년 연장 등을 건의하고 있어 논란이다. 


◇ 노동계 “탄력근로제 확대, 근로여건 악화시키는 악법”

노동계는 정부의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 방침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특히 노동자들은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노동시간과 조건 등 근로 여건을 악화시키는 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탄력근로 단위기간이 확대되면 주 64시간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는 기업은 하루 24시간, 주 80시간도 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동시간 단축을 무력화하는 탄력근로제 확대 강행이 아닌, 노동자들의 삶과 생존에 직결되는 법제도 전면 개정이 절실하다”며 “탄력근로제 확대 시도를 중단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진정한 법 개정을 선행하라”고 촉구했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사업체 가운데 81.5%가 “연장근로시간에 변화가 없거나 유사한 수준”이라고 답했고, 94.2%는 “제도 도입 후 임금감소가 없었다”고 밝힌 조사 결과를 법개정 필요성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 제도 도입 후 수반한 임금감소와 관련해 기본급 인상(52.1%) 또는 수당 인상 및 신설(47.9%)로 임금을 보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가 노동연구원에 의뢰해 발표한 탄력근로제 실태조사는 노동시간 단축을 이유로 탄력근로제 확대를 요구하는 재계·정부·국회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가 됐다. 이에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노총도 “탄력근로제 확대를 통한 이익이 중소규모 사업장보다 대기업 이익에 더 큰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대기업들은 지불능력과 신규채용 여력이 있음에도 지속적으로 노동자들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바탕으로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점이 이번 조사 결과로 입증됐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경영계가 그토록 도입 필요성을 호소했던 탄력근로제의 현장 도입 비율이 3.2%에 그쳤다는 사실은 ‘침소봉대’ 사자성어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한다”며 “정책 추진근거가 없는 탄력근로제 개악 시도를 중단하라”로 촉구했다.

◇ 경영계 “업무 특성 감안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해야”

이에 반해 경영게는 탄력근로제 확대뿐만 아니라 확대를 위한 입법과정까지 근로시간 단축 위반 계도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맞서 노사간 치열한 공방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영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주 52시간 근로단축 제도에 대한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 52시간 근로단축 제도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제조업과 달리 근무시간에 대한 개념이 다른 서비스 관련 업종에 적용하는 일률적인 제도는 무리라는 입장이다.

특히 경영계는 서비스업계에서 단위기간이 중요한 이유는 업계 특성상 프로젝트 단위별로 개발이 이뤄지고 결과물 산출에 대해 임금이 지급되는 정산 개념이 반영돼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선행 업무가 진행돼야 후행업무가 가능한 업무 특성을 감안해야 하고, 3개월 또는 6개월 간 집중해 근로하는 서비스업 특성상 단위 기간 설정에 대한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일단 정부가 제도 적용의 유예를 고려함에 따라 서비스업 분야에서 경영계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현 상태로 법이 시행되면 내년 1월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를 위반한 사업장의 경우 대표이사에 대한 처벌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탄력근로제 활용실태 조사결과 표, / 자료=고용노동부,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이러한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박사에게 의뢰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상시 5인 이상 노동자가 있는 기업 2436개사(탄력근로제 도입 138개, 미도입 2298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 따르면, 탄력근로제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 24.3%는 현행 탄력근로제로는 주 52시간 근무상한제도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또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해 정부와 국회가 탄력근로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를 하지 않으면 2020년 1월부터 주52시간 근무상한제를 적용하는 50~299인 기업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김 연구위원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관련해 대기업(300인 이상 사업체) 17.6%가 개선요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건설 ▲전기장비 ▲금속 ▲전기·가스·수도 등은 주 52시간 초과 노동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있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국회, 내년 2월 탄력근로제 확대 후속조치 마련

정부는 24일 올해 12월말에 종료되는 주 52시간 근로단축 관련 계도기간 연장에 대해 논의하고, 내년 3월31일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계도기간 연장 대상은 현재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준비기간이 부족한 기업이다. 또 사업 성격상 업무량의 변동이 커서 특정 시기에 집중근로가 불가피하지만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이 짧아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해당된다. 이들 기업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정법이 시행되는 시점까지 계도기간이 연장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을 모니터링 한 결과 주 52시간 이내로 근로하는 기업이 지난 3월에는 58.9% 정도였으나 10월 말 기준으로 87.7% 수준까지 증가했다. 이에 고용부는 300인 이상 기업에서는 주 최대 52시간제가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모니터링 결과에서도 여전히 12.3%의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에 애로를 호소하고 있는 만큼, 개별 기업의 사정을 고려해 계도기간을 연장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고용부는 근로시간 단축 현장안착을 위해 지난 6월 고위 당정청 협의 결과를 토대로 계도기간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근로시간 위반이 확인되더라도 최장 6개월의 시정기간(3개월+필요시 3개월 추가)을 부여했다. 시정기간 중 교대제 개편, 인력 충원 등 장시간 노동 해소를 위한 조치를 하면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다.

 

국회 차원에서는 근로시간 단축 현장 안착을 위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여야가 빠르게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확대 논의는 지난달 22일 출범한 사회적 대화 최고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진행할 방침이다. 국회는 이 과정에서 기업의 근로시간 활용 유연성과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임금보전 균형 등을 논의한 후 내년 2월까지 결론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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