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업무 대부분 하청에 떠넘겨…경영·노동계 안전 관련 대책 시각차 존재

국내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업무 도중 사망하는 등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기업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자료=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기업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안전 사고에 예방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원·하청 업체들의 양극화 현상이 이뤄지지 않도록 이해관계를 고려해 법·제도를 개선시킬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기업 대부분은 생산 공정에서 위험하고 까다로운 업무를 직접 하지 않는다. 원청업체인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비용과 시간 단축, 전문성 강화 등의 이유로 위험한 유독물질을 다루는 등의 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기고 있다.

지난 5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는 이산화탄소(CO2) 유출로 협력업체 직원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협력업체 직원들은 사업장 내 이산화탄소가 저장돼 있는 실린더가 파손되면서 가스가 유출돼 질식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고 당시 협력업체 직원들은 사업장 내 기존에 있던 소화설비를 새로운 장비로 교체하던 중이었다.

사고 위험이 높은 업무를 하도급업체에 맡겨두고 관리 책임을 소홀히 하다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27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 지하수로 청소 작업 중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이들은 모두 원청업체가 외주화한 위험 업무를 담당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다. 노동계에서는 대기업이 직접 부담해야 할 책임을 하청, 재하청에 떠넘기면서 결국 모든 위험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전가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홍승완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은 “하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고들은) 우연히 발생된 사고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사고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 하청업체 업무상 사망 사고, 원청 업체의 11배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조선·철강·자동차·석유 화학·전자 등 5개 업종 약 40만명의 근로자를 조사한 결과, 2015년 기준 원청의 재해율은 0.79%로 상주 사내 하청업체(0.20%), 비상주 사내 하청업체(0.08%)에 비해 오히려 높았다.

그러나 근로자 1만명당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인원을 살펴보면, 상주 사내 하청업체는 0.39로 원청(0.05)의 8배에 달하는 높은 비율을 보였다. 산재현황 기준으로도 상주 사내 하청업체의 업무상 사망 사고율은 0.55로 원청(0.05)의 11배에 달했다.

 

아울러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발표한 연도별 하청업체 산업재해 발생 관련 통계에 따르면, 산업재해 발생은 201542532, 201643250, 201743191, 201848125명으로 점차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이러한 수치가 실제보다 훨씬 더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청업체 근로자가 작업 과정에서 사고를 당할 경우 산업재해로 처리되는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산재사고의 내용을 살펴보면, 산업현장에서의 산재사망자 절반 가량이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969명 산재사망자 중 하청노동자 비율은 42.5%인데, 대기업으로 가면 그 비율은 더 늘어난다. 최근 3년간 50억원 이상의 건설공사 산재사망자의 98%, 300인 이상 조선업 산재사망자의 88%가 하청 노동자였다.

 

13일 한국지역난방공사 하청업체 관계자들이 추위 속에서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지역의 한 도로에서 열수송관 보수공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 사진=연합뉴스

노동계에서는 위험을 가장 취약한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떠넘기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면서 원·하청의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법의 보호대상이 되는 근로자의 범위가 일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한정돼 있어 노동계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산업안전보호법은 적용 대상이나 내용이 협소하거나, 하위 법령이나 위반 시 규제가 없고 현장 노동자 참여가 배제돼 있는 내용이 상당수”라면서 “소수 전문가들의 논의 중심으로 진행된 법안은 현장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보호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최정규 변호사는 “산재가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기업들은 산재 처리했다는 무책임한 반응만 보이고 있다. 비용절감을 위해 하청업체들에게 위험한 업무를 떠맡기면서도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피해가 발생했을 때 원청 업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엄중한 처벌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경영계는 안전 문제는 고용형태와 관련이 없으며, 안전을 위해서는 오히려 전문 외주업체에게 업무를 위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험 업무의 외주화는 직접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절감하기 위해 국내 대기업들이 대부분 선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경영계는 해당 업무에 전문성을 가진 외주업체를 고용할 경우 오히려 안전 수준이 한층 높아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중심의 피라미드형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대체로 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원청에 의존적인 영세 하청업체들이 일감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 기간을 단축하고 도급단가를 낮추는 상황에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영세 하청업체가 원청 사업장에서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작업환경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 전문가들 “원·하청업체 이해관계 고려해 법·제도 개선해야”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원·하청 업체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양극화 현상이 이뤄지지 않도록 이해관계를 고려해 법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영신 민변노동위 산재팀 변호사는 “사업장에서 산재가 일어나도 노동자들을 지시했던 원청이 문제를 책임지는 게 아니라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하청업체들이 책임을 지고 있다”며 “예를 들어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시가 스크린도어 업무 관련해 2인 이상 일하도록 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특정 업무에만 대책이 내려지고 있다. 전체적인 업종에 대한 법 제도 개선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법학교수는 “산업안전보호법을 통해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위험 유해 작업을 저지시키고 확대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문제는 어떤 업무를 위험한 업무로 볼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며 “일부 업무만 위험한 업무로 규정하다보니 현장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위험한 업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청업체의 영세성, 관리능력에 대해 지적하며 “대부분의 하청업체들이 안전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힘든 상황인 만큼 대기업이 전문 인력을 동원해 이에 지원해줘야 한다”며 “또 위험의 외주화가 아니더라도 원청업체가 포괄적인 사전 예방 교육 등을 통해 업무 전반적인 부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결국 하청 노동자들의 윤리적인 직업적 동기부여를 높여줄 체계적인 연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산업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안전 규칙을 준수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하청업체의 안전의식이 저하되면 사고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고용불안, 저임금인 근로조건의 열악성이 업무에 대한 사기를 저하시킨다”며 “정부가 관심을 갖고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반영해 현장을 직시하고 근로조건을 완화시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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