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싸움 아닌 구조적 문제…해묵은 문제 터진 것

택시 업계가 팔을 걷어부쳤다. 가만히 있다가 눈뜨고 코 베일세라 겨울 거리로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존 사업자들이 신 플랫폼에 단순 반대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택시 업계에는 전부터 짜내지 못한 고름이 있었고, 이번에 그것이 터진 것이다.
 

오는 20일 택시기사 10만명이 여의도로 몰려온다. 국회를 포위하고 서강대교와 마포대교를 점거할 예정이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등 4개 단체가 참여한 택시비상대책위원회는 19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일 오후 2시부터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집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집회가 과격하게 변질되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다. 생존권을 걸고 생업을 포기하고 나온 이들이 대다수일 터이니 말이다.

20일 기자회견에 앞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택시·카풀 TF 위원장이 택시 단체 농성장을 직접 찾아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택시 업계는 ‘카풀’ 논의 자체가 불편하다. 다른 출발선에서 경쟁하면 결국 불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택시기사들의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한 불만도 대단하다. 공생관계인 줄 알았던 플랫폼에 배신을 당했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택시 스마트호출, 강제 배차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던 도중 카풀 서비스까지 기습적으로 선보이겠다고 밝히자 ‘협의’가 배제된 일방적인 거대 기업의 횡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렇듯 반감이 가득한 상황에서 택시기사들의 귀는 멀었다. 카카오 직원들은 카카오 판교 지사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지만 목적지를 ‘카카오 판교오피스’로 입력하지 못하고 있다. 워낙 기사들의 반발이 거세 카카오가 목적지인 요청을 받지도 않고 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카카오 판교오피스 부근 식당의 트래픽만 높아지고 있다고.

택시기사들이 택시 승객에게 카카오T 서비스를 이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장면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의 총알받이가 되면서 다른 승차공유 플랫폼은카카오모빌리티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카카오 카풀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가정하며 걱정하기도 했다. 현재는 택시가 잡히지 않으면 ‘스마트호출’ 버튼을 선택하는 옵션이 뜨는데 나중에는 ‘카풀’을 호출하는 버튼이 뜰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택시 호출이 카풀의 미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다.

상황이 이렇게 번질 때까지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택시는 여러 문제로 앓고 있었는데 여기다 카풀이라는 기름까지 부어서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는커녕 대책 없이 뒷짐만 지고 있었다.

간단한 밥그릇싸움이나 신-구의 대결로 보지 말아야한다는 의견은 취재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택시업계, 승차공유 플랫폼 업계, 전문가 모두 택시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선결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 대안에 대해서는 여러 해 비슷한 방법만 제시되고 전혀 실행되지 못했다. 택시업계가 논의를 거부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상생법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양쪽 모두 만족스럽지 않은 방법보다는 택시업계를 속박하고 있는 규제먼저 세련되게 손질하는 것이 먼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