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사회적 대화 기구 발족 앞두고 반대 입장…전문가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명확하게 논의해야”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 처벌 유예기간 연장을 검토하면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 처벌 유예기간 연장을 검토하면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정부는 산업 협장의 혼란을 감안해 단위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경제계가 단위기간을 ‘최대 1년’으로 늘릴 것을 요구함에 따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입법 완료 시점인 내년 2월까지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위반하더라도 처벌을 유예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은 올해 12월말 까지였으나 정부는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처벌 유예기간 연장을 검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제는 주 52시간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맞추는 제도다. 업무가 많을 땐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대신 적을 땐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현재 한국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은 2주~3개월이다. 노사 합의로 3개월 이내 기간에서 평균 법정근로시간인 주 52시간을 맞추면 된다.

그러나 그동안 기업들의 탄력근로제 활용은 지난 201년 기준 3.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68시간 노동이 가능한 구조에서 노동자 대표와 합의해야 하는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다만 당장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지켜야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탄력근로제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히 경제계는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고, 제도 도입에 필요한 노동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해당 근로자 대표 협의’로 완화해달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문제는 현행 탄력근로제 3개월 운영시 노동자가 주당 최대 64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추가 연장근로 12시간)을 일할 수 있는데, 이 기간을 늘리면 주 64시간 일하는 주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면 노동자는 3개월 동안 주 64시간을 일하고 나머지 3개월을 40시간 일하는 게 가능해진다. 주 52시간제도와 탄력근로제 사용으로 6개월 동안 평균 52시간만 지키면 되기 때문이다.

경제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은 환영할 일이지만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 대책은 탄력근로제 단위시간이라는 입장이다. 탄력근로제가 최대 1년 단위로 인정돼야 개별 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기업 경영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경쟁력 저하를 생산성 증가로 뒷받침하기 위해선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처럼 최대 1년까지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게 경제계 측 설명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개별 기업들이 노사 합의로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1년 단위 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조선·건설 등의 업종은 6개월 정도 집중 근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자, 반도체, 바이오, 게임 등의 업종도 경쟁력의 핵심인 신제품 개발과 R&D(연구개발) 업무에 3개월 이상의 집중 근무가 필요하다”며 “3개월 단위의 현행 탄력근로제는 현장에서 유명무실하다”고 강조했다.

경제계는 탄력근로제 외에도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은 인사팀을 중심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준비해왔지만, 중소·중견기업들은 여력이 되지 않아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며 “보완입법이 조속히 이뤄져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줄여달라”고 지적했다.

◇ 노동계 “탄력근로제 확대, 반드시 막아야”

이에 반해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이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한다며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아직 적용되지 않은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탄력근로제 기간이 확대될 경우 기존 64시간에 주말 이틀의 근로시간인 16시간(8시간+8시간)을 포함해 최대 80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우려를 보였다. 노조가 있는 기업들은 탄력근로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의 피해를 그대로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법안 시행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노동시간 단축 법안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현행 탄력근로제도만으로도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건강권 침해, 실질 임금 감소 등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근로시간 단축 시행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과 양질의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노동 강도가 강화되고 임금만 감소하는 사례가 확산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며 “시행과 동시에 6개월의 계도기간을 둬 사실상 법 시행을 미뤘음에도 지금 그 계도기간을 다시 연장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를 논의할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는 인적 구성을 마무리하고 조만간 발족할 예정이다. 경사노위에서 노동계를 대표하는 한국노총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음에 따라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종전 1주 68시간제에서 이미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도입돼 있었다는 게 황당한 일”이라며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제도를 온전히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이 1년 단위로 확대되는 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의 국가에서도 보이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일본에서는 1년 단위 탄력근로제 활용도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높지 않다”며 “우리나라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논의가 업무의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지, 돌발적 업무에 대비하기 위한 논의인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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