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절감·책임 전가’ 업무 외주화 확대…노동자 안전보다 책임 회피 초점의 발전사·하청 계약

공공운수노조는 이달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24) 씨의 사진을 15일 공개했다. 고 김용균 씨가 지난해 9월 입사를 앞두고 자택에서 정장을 입고 씩씩하게 거수경례하고 있다. / 사진=공공운수노조

“왜 우리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앞으로도 이런 일을 겪어야 시정이 되는 건지, 지금 바로 시정이 될 수 있는 건지 , 그런 것 좀 말씀해 주세요.”
(고 김용균 씨 어머니. 12일 서부발전 앞 집회 발언.)

“제발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더 이상 옆에서 죽는 동료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태성 발전 비정규직연대회의 사무국장. 지난 10월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서 발언.)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24)가 석탄운송설비에서 운전 업무를 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이 같이 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은 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왜 수십 명 이상의 하청 노동자가 계속해서 죽었던 것일까.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에서 위험 업무의 외주화 구조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원청은 외주화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안전사고 시 책임을 하청업체로 넘길 수 있었다. 원청에게 위험 업무 외주화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청업체 직원들도 위험 업무 외주화를 통해 위험한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부는 하청 노동자들이 죽어갈 때 마다 책임을 하청업체에만 물었다. 근본적 문제 개선은 없었다.

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사고 58건이 발생해 하청 노동자 12명이 죽었다. 위험의 외주화로 발전소에서 일어난 산재 사망사고 10건 중 9건이 하청노동자에게 일어났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발전노동자 40명이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92%인 37명이 하청노동자였다. 5개 발전사에서 2012년~2016년까지 5년간 발생한 346건 사고 중 337건(97%)이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들 사망, 안전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하청 노동자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이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발전소에서 위험한 업무의 외주화가 그동안 유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외주화는 원청 업체인 발전사 입장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사고 시 책임을 하청업체에 넘길 수 있다. 이에 수많은 하청 노동자가 죽어갔지만 원청인 발전사는 위험 업무 외주화를 유지, 확대했다.

2013년 발전정비산업 경쟁도입 1단계가 시행됐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에 따르면 1단계 경쟁도입 결과 민간 정비업체의 점유율이 2012년 말 35.7%에서 2017년 말 53.2%으로 17.5%포인트 늘었다. 이에 발전소는 위험 업무인 유해가스 제거, 수처리, 운전, 정비 등 발전과정의 전처리, 후처리를 모두 외주화했다. 이 일들은 주로 위험하고 더러운 일들이다.

위험 업무의 외주화 이후 하청업체들은 경쟁 입찰로 일거리를 받았다. 하청업체들은 낙찰을 받기 위해 낮은 금액을 써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인건비가 줄고 2인 1조 업무 시스템이 없어졌다.

고 김용균씨 사고도 그랬다. 서부발전이 2015년 경쟁 입찰 시스템(외주화)을 도입하면서 기존의 2인 1조 시스템이 없어졌다. 서부발전의 발주는 사업비 중심으로 예산을 반영하다보니 하청업체들은 낙찰을 받기 위해 조금이라도 낮은 금액을 써냈다. 이에 인건비가 줄어 원청인 서부발전과 하청 한국발전기술은 2인 1조 시스템을 지키지 않았다.

위험한 작업 환경의 위협을 느낀 하청 노동자들은 인력을 늘리고 작업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은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홀로 업무를 했고 지난 11일 새벽 사고가 난 그 순간에도 김씨를 구할 사람이 곁에 없었다.

현장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 요구도 이뤄지지 않았다. 용균 씨 사고가 있기 전 하청 노동자들은 근로 환경 설비 개선을 요구했다. 컨베이어벨트 구간에 떨어진 석탄을 청소할 때 사람이 직접 몸을 구부려 들어가는 대신 고압의 물로 청소할 수 있도록 개선을 요구했다. 만약 이 요구가 받아들여졌다면 사망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왜 일상적으로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반복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며 “그것은 설비 개선 요청하고 고쳐달라고 원청에 요청해도 원청이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청은 요청 사항에 맞춰 설계, 발주하고 정비해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는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요구 사항을 개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지부장은 “용균씨 사망사고 전날에도 업무 장소가 혼자 다니기 위험하니 두 명이 한조가 돼 점검하고 청소해야 한다고 회사 관리자(한국발전기술)에게 말했다. 그러나 관리자는 권한이 없다”며 “인원 늘리는 것은 원청에 권한이 있다. 원청이 인원 늘려주고 이에 맞춰 돈을 늘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청은 알았다고 하고 개선이 없었다”고 했다.

◇ 발전사, 위험 업무 외주화로 사고 책임 하청에 넘겨

원청인 발전사는 위험 업무를 외주화하면 비용 절감 뿐 아니라 안전사고 책임도 회피할 수 있다. 사고 시 책임을 하청업체에 넘길 수 있는 것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최근 3년 동안 4명이 죽었다. 최근 5년간 서부발전의 태안, 서인천, 평택발전소 등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5명, 부상자는 39명이었다. 이중 95.5%인 42명이 하청업체 노동자다.

그런데도 태안화력발전소는 3년째 무재해 인증을 받았다. 서부발전은 무재해 사업장 인증을 받고 산재보험료 22억4679만원을 감면받았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해 화력발전 5개사(남동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 등 7개 전력기관에서 감면받은 산재 보험료는 497억원에 달했다.

이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상 도급인(원청) 책임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도급인 책임도 주로 건설업쪽 사고들 중심으로 기술돼 있어 그 범위도 좁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시 도급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를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수급인의 안전보건교육 지도와 지원, 작업장 순회점검, 안전보건 협의체 구성운영 정도여서 도급인 책임 미약하다”며 “산업재해 예방조치에서도 현행 법은 주로 건설업쪽 사고들 중심으로만 기술되어 있어서 기계협착이나 사내 교통사고(지게차 등) 같은 것은 적용이 안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용균 씨 사고도 컨베이어벨트의 기계협착 사고였다.

이에 정부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었을 때마다 특별근로 감독을 실시했지만 근본적 개선책은 내놓지 않았다. 하청업체에만 벌금과 징계를 부과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그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시 하청업체에만 책임을 묻고 원청에는 묻지 않았다”며 “위험 업무 외주화에 대한 근본 대책은 없었다. 국회도 원청 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노동자 안전보다 책임 회피·비용절감 초점 맞춘 '발전사·하청노동자 계약'

발전사와 하청업체 간, 발전사와 하청 노동자 직원 간 계약서나 규정도 노동자 안전보다 비용절감과 책임 회피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에 이상이 생겼을 때 고압모터를 정지하려면 운전 업무자들은 원청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용균씨도 석탄운송설비에서 운전 업무를 하던 중 작동하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신대원 지회장은 “발전소는 임의로 컨베이어벨트의 고압모터를 정지하려면 원청에 보고하고 허가를 받고 해야 한다. 이러한 원청의 규정이 있다”며 “왜 세우는지, 언제까지 세우는지 모두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한다. 이런 절차의 어려움이 있기에 컨베이어벨트에 문제가 생겨도 고압모터를 정지하지 못하고 작업하는 일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료=공익제보자
발전사는 하청 소속 현장 관리자와 협약서를 맺어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관리자에게 물었다. 하청 소속 관리자 인사에도 관여했다. 이에 관리자는 현장 노동자들의 설비 개선 요구 등을 제대로 요청하지 못하고 안전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게 됐다.

 

공익제보자가 보낸 안전관리협약서는 한국남동발전과 한국발전기술 간 맺은 것이다. 협약서 3조는 소장과 관리감독자는 중대 재해 및 동일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본부의 인사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했다.

 

공익제보자는 이러한 협약서가 남동발전 뿐 아니라 다른 발전사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관계자는 “하청업체 소속인 현장 관리장(소장)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나 개선 사안을 원청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원청은 소장과 안전관리협약서를 맺어 사고 책임을 묻고 인사 조치에도 관여할 수 있다”며 “이에 소장들은 중간 소통 창구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사고 책임을 지고 떠난 소장들이 여럿이다. 이에 소장들은 환경 개선 요구도 제대로 못하고 안전사고가 일어나도 숨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 지부장은 원청 발전사 직원들도 그동안 하청 노동자 안전사고 문제에 나서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원래 원청 정규직이 하던 일 가운데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외주화로 하청 노동자가 맡게됐다. 그동안 수많은 하청 노동자가 죽었지만 원청 직원들은 이 문제의 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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