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들 “사납금 때문에 어쩔 수 없어”…택시회사 책임론 부상

/이미지=이다인 디자이너

지난 13일 오후 9시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엔 여러 대의 택시가 있었다. 시민들은 앞쪽의 택시부터 하나씩 탑승했다. 승차 거부는 없었다. 하지만 자정을 넘기자 택시들은 사라지고 시민들만 남아 택시를 잡고 있었다. 택시가 도착하면 “OO 가요?”라고 묻기 바빴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최모씨는 “이러니까 택시 편을 못 든다”며 “거리가 멀어야만 손님이냐. 손님이 먼저 어디 가는지 묻고 타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오후 9시 홍대입구 9번 출구에 택시가 정차해 있다. /사진=최창원 기자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T 카풀’에 대한 택시업계의 반발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택시업계의 주장에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많은 시민이 카카오 카풀의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 지난 10월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 중 ‘카카오 카풀이 시민 편익 증진에 도움 된다’고 응답한 사람은 56%(280명)로 집계됐다.

시민들이 이처럼 택시업계를 등지고 카풀 도입에 찬성하는 이유는 택시업계의 승차 거부 등 불친절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접수된 택시불편신고 민원 14401건 중 불친절(5006건)과 승차거부(4087건)가 민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부당요금(3439건)이 뒤를 이었다.

택시업계는 승차 거부 등 불친절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반응이다. 기자와 통화한 일부 택시 노조 관계자는 승차거부 등으로 여론이 택시업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는 질문에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봤고 우리도 그 점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 심야 시간 승차 거부 ‘여전’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택시를 얼마나 기다렸냐고 묻자 짜증 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대학생 최모씨는 “12시 20분에 아르바이트를 끝나고 나왔으니 벌써 20~30분 기다린 것 같다. 추운데 지하철이 끊겨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한다”며 “(카카오) 카풀이 얼른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택시가 잠시 멈춘 뒤 손님을 그대로  지나쳤다. /사진=최창원 기자

택시가 안 와서 계속 기다리고 있냐는 질문에 최씨는 “그런 게 아니다. 집이 갈월동인데, 거리가 멀지 않아 택시 기사들이 안 태우는 것 같다”며 “벌써 택시 두 대를 놓쳤다. 두 대 모두 갈월동 가냐고 물었더니 그냥 지나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택시들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잠시 멈춰 무언가를 묻거나 답하곤 다시 움직였다. 모여있는 시민들에게 택시 기사와 무슨 얘기를 나눈 것이냐고 물었다. 한 시민은 “택시 기사가 어디 가느냐고 물어 증산역 부근으로 간다고 답했다”며 “(택시 기사가) 듣고는 그냥 앞쪽으로 갔다”고 말했다.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시민은 ‘예약등’을 켠 택시가 행선지를 묻는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세한 상황을 묻자 “예약등을 켜거나 빈차등을 꺼둔 상태로 다가와선 어디 가느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도 그랬다”며 “가게가 끝나고 심야에 택시 탈 일이 많은데 10번 중 3번은 예약이나 빈차가 와서 행선지를 묻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홍대입구역은 지난 5년간 택시 승차 거부 신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이다. 지난달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홍대입구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2064건의 승차 거부 신고가 발생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길거리에 택시는 많았지만 탈 수 있는 택시는 없었다. /사진=최창원 기자
◆ 여론 알지만 어쩔 수 없어…“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지난 10일 분신한 택시 기사 최모씨는 유서를 통해 “택시도 승차 거부 등 불친절에 대해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택시는 12시간을 근무해도 5시간만 인정받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다”며 택시 업계의 승차 거부 등 불친절의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기자가 신림동으로 가기 위해 탑승한 택시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씨가 남긴 유서 이야기를 꺼내자 택시 기사는 바로 사납금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납금은 택시 회사가 기사에게 차량을 대여해주는 대가로 회사에 납부하는 금액을 말한다. 보통 하루에 10~15만원이다.

15년간 택시를 몰았다는 택시 기사 유모씨는 “그 양반(최씨)이 말하고 싶었던 건 사납금이 부조리하다는 내용일 거다. 나도 하루에 20만원 정도 벌면 그중 절반 이상을 사납금으로 낸다”고 말했다.

승차 거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예약 등을 켜놓거나, 빈차 등을 꺼놓고 손님에게 다가가는 행위는 내가 생각해도 못된 짓이다. 신고 당하지 않으려는 꼼수”라면서도 “장거리 손님을 받아야 돈을 벌고 사납금을 낼 수 있으니까 참 미안한데 어쩔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작년 법인택시 기사들은 하루 평균 16만 5000원을 벌었다. 그 중 13만 5000원을 회사에 사납금으로 냈다. 문제를 인지한 국회도 사납금 제도 폐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사납금 제도 폐지를 법률로 규정하고 월급제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이날 택시 기사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손님들이 택시 기사가 불친절하다고 욕하는 걸 안다”면서도 “먹고 사는 일이 힘들다 보니 그게(친절한 응대) 잘 안된다”며 미안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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