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설비 즐비한데 ‘왕복 2㎞’ 나홀로…동료들 “근로 개선 더디고 비용절감으로 인원 부족”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 숨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 / 사진=이준영 기자

최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24)가 석탄운송설비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19) 군이 홀로 승강장을 점검하다가 죽었다. 외주화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잇따라 죽었다. 인원이 부족해 혼자서 많은 업무를 맡았고 작업 환경도 위험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 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사저널e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으로 공공부문과 민간 기업 외주화 실태와 원인, 대책을 취재해 보도한다. [편집자주]

“젊은 친구가 죽었다는 게 마음 아파서 촛불집회에 나왔다. 한창 인생의 아름다운 나이인 24살에 회사의 기계가 됐다. 공공기관 비정규직들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특히 발전소는 전기를 만들어 많은 이들이 쓰게 하는 공공성 측면이 강하다.”

지난 13일 저녁 7시 충남 태안터미널 앞 사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던 김아무개씨(55세) 이야기다. 이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도 촛불 집회가 열렸다. 태안화력발전소에 일하다 죽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현(24)씨를 추모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촛불집회였다. 이날 집회에는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노동자들 외에 이 지역 근처에 사는 시민들도 촛불에 참여했다. 


기자가 직접 찾은 집회 현장에는 태안 소재 여고생들도 있었다. 태안여고를 다니는 이아무개양은 “학교 선생님이 여기서 촛불집회를 한다고 알려줘 참여하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김용균씨는 지난 11일 새벽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운송설비에서 운전 업무를 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이준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지회장에 따르면 용균씨는 왕복 2㎞에 달하는 구간을 홀로 맡아 작업하다가 사고로 사망했다. 인원 부족으로 김 씨가 사고를 당한 순간 그 곁에 아무도 없었다.

용균 씨 부모는 사고의 진상규명을 마칠 때까지 장례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지난 13일 용균 씨 어머니와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공단, 이준석 지회장이 사고 현장 조사를 했다. 이준석 지회장은 “김용균 씨 어머니가 아들이 일한 작업장과 시설들을 보고 이렇게 열악한데서 일할 줄 몰랐다며 우셨다”며 “김씨 부모님은 사고 진상규명을 할 때까지 장례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과 14일 고인의 빈소에는 수많은 정치인과 동료들, 친구들이 방문했다.

◇ “사고 원인, 위험 업무 외주화”…근로환경 개선 더디고 인원 부족

용균씨의 죽음을 부른 태안화력발전소 사망 사고의 원인은 위험한 업무의 외주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외주화의 특성상 근로환경 개선이 더뎠고 인원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용균씨는 한국발전기술 소속 1년 계약직 현장운전원이었다. 한국발전기술은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다. 서부발전은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한다.

용균씨가 맡았던 일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다. 한국발전기술지부에 따르면 이 업무는 주로 컨베이어벨트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주변에 석탄 등이 떨어져 있을 경우 치우는 업무였다. 용균씨가 홀로 맡았던 구간은 왕복 2㎞에 달했다. 용균씨는 홀로 이 업무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고의 순간 용균씨를 구해낼 사람이 주변에 한 명도 없었다.

사실 이 업무는 서부발전 정규직원이 2인 1조로 해왔던 일이었다. 그러나 서부발전이 2015년 경쟁 입찰 시스템(외주화)을 도입하면서 2인 1조 시스템이 없어졌다. 서부발전의 발주는 사업비 중심이었다. 하청업체들은 낙찰을 받기 위해 낮은 금액을 써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인건비가 줄고 2인 1조 시스템도 없어졌다.

운전 업무의 외주화 도입 후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업무가 힘들고 위험하기에 인력 증원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준석 지회장은 “김씨가 혼자 맡았던 업무 구간은 너무 길었다. 한국발전기술지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국발전기술에 인원 증가를 요청했었다”며 “그러나 원청인 서부발전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은 기존 계약금액이 정해져 있기에 어렵다고 했다”고 말했다.

용균씨 사고가 있긴 전에도 하청 노동자들은 근로 설비 개선도 요구했었다. 컨베이어벨트 구간에 떨어진 석탄을 청소할 때 사람이 직접 몸을 구부려 들어가는 대신 고압의 물로 청소할 수 있도록 개선을 요구했다. 만약 이 요구가 받아들여졌다면 사망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부발전 측은 “고압의 물로 떨어진 석탄을 청소할 경우 겨울에 얼고 타워가 높아 또 다른 위험이 있다”며 “대신 진공 처리 할 수 있도록 해놨다”고 말했다.

이러한 외주화 방식은 서부발전 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동, 남부, 중부, 동서발전까지 모두 같은 상황이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에 따르면 2017년 10월 기준 위 5개 발전사의 도급 인원은 경상정비 업무 3063명, 연료환경설비운전 업무 2283명이었다. 이 발전사들은 이 업무들을 금화PSC, 한전산업개발, 일진파워, 한국발전기술, 수산 등의 하청업체에 맡겼다.

위험의 외주화로 발전소에서 일어난 산재 사망사고 10건 중 9건이 하청노동자에게 일어났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발전노동자 40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92%인 37명이 하청노동자였다. 5개 발전사에서 2012년~2016년까지 5년간 발생한 346건 사고 중 337건(97%)이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지난 13일 충남 태안 터미널 앞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를 추모하고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 사진=이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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