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베스트셀러 10권 중 6권이 힐링 에세이…과거 ‘자기계발서’ 인기 열풍과 대조적

2008, 2013, 2018년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자료=교보문고,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남들한테 이해받으려고 사는 거 아닌데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中
“가장 좋은 것도, 가장 나쁜 것도, 사실 별거 아니에요.”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中

위 문장들은 올해 베스트셀러 10위에 든 두 권의 에세이에서 발췌한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현실의 반영이다. 올 한해 국내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바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였 다. 실제로 매일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서 해당 서적이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오른 건 아닐 것이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기어코 위로를 찾기 위해 행복을 말하는 곰돌이 푸를 집어든 것이다. 위로와 치유를 선사하는 에세이들에 2018년의 독자가 적극 응답한 이유다.

교보문고가 올해 1월 1일부터 12월 2일까지 교보문고 영업점, 인터넷문고, 디지털교보 판매량을 더해 2018년 연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발표했다. 순서대로 1위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에세이), 2위 모든 순간이 너였다(에세이), 3위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세이), 4위 82년생 김지영(소설), 5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에세이), 6위 언어의 온도(에세이), 7위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에세이), 8위 돌이킬 수 없는 약속(소설), 9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소설), 10위 역사의 역사(인문교양)였다.

주목할 점은 10위 안에 에세이 장르 서적만 6권이 랭크됐다는 것이다. 연령대·성별로 뜯어봐도 에세이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10대 남녀 카테고리에서 곰돌이 푸, 모든 순간이 너였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언어의 온도 등이 판매 순위 10위권 내에 들었다. 20~30대에서도 곰돌이 푸, 모든순간이 너였다, 언어의 온도가 인기 순위 10위권에 포함됐다. 40~50대에서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신경 끄기의 기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언어의 온도 등이 순위에 들었다.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는 60대 여성 이상 베스트 순위에서 아깝게 11위에 그쳤지만, 60대 이상 남성 베스트 4위에 오른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교보문고는 이에 대해 “할머니부터 손녀딸까지 여성의 독자적 삶과 권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고 이에 대응하는 할아버지의 현실적 처세술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특징은 또 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인플루언서 작가의 두각이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의 하태완 작가는 인스타그램 2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이른바 인플루언서다. 그는 SNS서 ‘완글’ 이라는 필명으로 게시한 글들을 엮어 책을 출간했다. 굳이 등단이라는 공식적인 작가 데뷔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여러 독자의 공감을 사는 콘텐츠 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다. 하태완 작가 이외에도, SNS에서 주목을 받은 글을 묶어 책으로 출간하는 사례는 점차 늘고 있다. #글귀스타그램으로 게시된 인스타그램 게시글만 50만개를 넘어선 것도, 이같은 소소한 글귀의 인기를 증명한다.

◇ 10년 전, 5년 전 베스트셀러는 ‘자기계발·소설’ 중심

대한민국 서점가를 휩쓴 에세이 열풍, 과거에는 어땠을까. 이전에는 사뭇 달랐다. 시사저널 이코노미가 10년 전인 2008년과 5년 전인 2013년 당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목록을 들여다 본 결과, 소설과 자기계발·토익토플 관련 서적이 눈에 띄었다.

2018년 베스트셀러 연령, 성별 순위. /자료=교보문고,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2008년 베스트셀러 1위는 호주의 작가이자 전직 TV 프로듀서 인 론다 번(Rhonda Byrne)의 ‘시크릿’이었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富)와 성공의 비밀’을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책은, 부 를 이룬 24명의 사람들의 성공 비법을 전하며 당시의 독자에게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부유하게 살기’를 독려했다. 2위와 3위는 모두 베스트셀러 작가의 에세이인 이외수, 공지영 작가의 ‘하악하악’과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였다.

두 베스트셀러 작가의 산문집을 마지막으로, 다시 4위부터 10위까지는 토익 RC 문제집, 기욤 뮈소의 ‘구해줘’, ‘사랑하기 때문에’ 등 어학, 자기계발과 소설 장르가 채웠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동시에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3년에는 1위와 10위를 제외한 나머지 순위를 소설과 자기계발서가 차지했다. 2013년 베스트셀러 1위는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로 12월 현재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10위는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였다. 두 권은 각각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방법’과 ‘제대로 나이 먹기’를 주제로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책이다.

2위부터 9위까지를 채운 장르는 소설이 4권, 자기계발이 3권, 토익토플이 1권이었다. 2위는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프랑수아 를로르 작가의 ‘꾸뻬씨의 행복여행’, 3위는 국내서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4위는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 5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소설이었다. 6위부터 8위는 ‘김미경의 드림 온’,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습관의 힘’ 등 자기계발서였다. 9위는 해커스 토익 보카 등 어학서였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과거와 현재 베스트셀러 목록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같은 힐링 에세이 열풍에 대해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쟁 사회의 단면”이라면서 “물질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마음의 여유가 적어지는 경쟁지향적인 사회로 가다보니, 이에 대한 위로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차원으로 책으로부터 찾으려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해당 에세이들에는 현실의 어려움을 직시하고 극복하자는 당찬 주문이 들어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은 상대의 취향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공격하는 사람들을 ‘취향 나치’라고 지적하며, 그들에게 정중히 “취향 존중을 부탁”하자고 이야기한다. ‘잊고·묻고·웃자’는 위로를 넘어서, ‘필요한 상황에서는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또다른 치유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인간관계가 과거에는 대체로 면대면 커뮤니케이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SNS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떄문에 SNS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위로 받고, 좋은 것은 모방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SNS 작가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라고도 덧붙였다.

재미있는 포인트도 있다. 올해 베스트셀러 9위에 오른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지난 2013년 베스트셀러 5위였다. 2012년 12월 출간된 해당 작품이 올해 2월 히로키 류이치 감독의 영화로 개봉하면서 다시금 주목받은 것이다. 한 책이 여러 각도로,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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