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금융당국도 국내 은행의 신뢰성 중요하게 보고 있다”

“해외진출을 위해 외국 금융당국과 협상을 하는데 놀랐던 적이 있다. 그쪽에서 우리나라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은행에 대한 국내 기사들을 수시로 확인하며 문제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해외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는 한 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해외 진출이 얼마나 어렵냐는 질문에 위와 같이 답변했다. 그는 외국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의 수익성과 자본적정성만 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국내 언론 기사를 통해 은행의 신뢰성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외국의 금융당국도 은행의 신뢰를 수익성과 함께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은행이 관리하는 돈은 첫째로 타인의 돈이다. 대중의 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돈을 관리하며 가계와 기업에 대출한다. 이를 통해 국가 자산이 사회 곳곳에 재투자되도록 하는 것이 은행의 주된 역할이다. 그 역할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의 돈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덕목이다. 덕목이라고 해봐야 거창하지 않다. 신중함과 성실함, 더 나아가 대중의 돈으로 은행이 운영되기 때문에 생기는 공공의 가치실현 의무도 은행에 요구된다.

올해 국내 은행들은 대중의 돈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는 성공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과 의무 실현에 있어서 정반대 지점에서 움직였다. 채용비리로 올해 말까지 은행들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올해 초에는 은행지주의 지배구조 논란으로 업권이 시끄러웠다. 일부 은행들의 대출금리 조작 혐의는 신뢰에 금이 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은행이라면 돈을 관리하기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함에도 결국 굵직한 논란들과 이슈로 ‘돈이라면 뭐든 하는 조직’으로 오해받기에 충분했다.

사실 은행들의 실적은 ‘이보다 좋을 수 없다’였다. 주요 은행들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4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1% 크게 증가했다. 특히 KB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3분기보다 28.9% 늘며 은행권 전체 순이익을 높였다. 수익성도 나아졌다. 국내 은행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65%, 자기자본순이익률(ROE)은 8.26%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0.11%포인트, 1.52%포인트 상승했다. 부실채권비율은 0.96%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0.19%포인트 하락했다.

수익성만 보면 올해 은행의 경영 방법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들에 요구되는 공공의 가치 실현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고객 신뢰와 사회적 가치 실현이 은행의 이해관계에 상충되기라도 하듯 은행들은 여러 논란을 만들었던 것이다.

올해 국내 은행들은 돈 앞에선 성실했지만, 신뢰에선 부족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들이 단기적 이익에 치중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대중의 신뢰를 쉽게 잊는 경우가 생기는 것일 수 있다. 이익과 신뢰는 같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둘 중 하나만 달성한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내년에는 올해 은행 업계를 휩쓸었던 논란들을 발견하기 어려운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신뢰를 지키는 경영이 은행의 수익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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