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영장 범위에 모두 포함되는 증거들” vs 삼성 “별건 압수수색으로 위법해”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 9월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노조와해 의혹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검찰이 수집한 노조와해 문건을 증거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삼성 측은 검찰이 압수한 문건들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물로 재판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야 하고 이에 따라 압수한 문건들의 증거능력이 유효하다고 맞서고 있다.

노조와해 문건의 증거 수집 방법 적법성 논란은 이 사건 수사의 계기가 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삼성의 소송비 대납 사건 수사부터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태업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 노조와해 의혹 사건 2차 공판에서 관련 증거물을 입수하게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 2월 8일 삼성전자가 이 전 대통령을 위해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해 준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삼성전자 수원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수사팀은 본사 정문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며 신종균 부회장의 사무실 등의 위치를 물었지만, 건물이 많고 구역이 넓어 위치를 알지 못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에 검찰은 “삼성 직원들은 입구에서부터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압수수색에 필요한 직원 명단과 배치표 등 정보 제공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다”라며 “(사무실 등의 위치는) 내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쉽게 검색할 수 있었다. 삼성 측이 수사팀의 진입을 늦추려 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본사 입구에 도착한지 1시간 20여분만에 인사팀 사무실에 도착했으나, 그곳에는 압수수색에 참여할 직원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무실을 살펴보던 수사관이 인사팀을 지휘하던 송아무개 전무의 컴퓨터 모니터에서 인사팀 직원들끼리 사내 메신저로 주고받은 내용을 확인했다.

메신저에는 검찰의 압수수색 진행 정보와 사무실 내 자료를 빼돌려 숨기겠다는 내용, 검찰이 인사팀 사무실로 들이닥칠 것으로 예상되니 퇴근한 것처럼 서둘러 탈출한 정황이 남아있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검찰이 이날 법정에서 공개한 메신저 대화 내용에는 “책상 위의 서류를 전부 치우고 서랍을 잠가라” “하드는 이미 제 차에 넣어뒀다” “전무가 (사무실에) 있지 말라고 해서 다 나간다”는 등의 표현이 있다.

검찰은 당시 당직 직원이던 심아무개씨를 증거인멸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고, 숨겨둔 하드디스크 등을 압수했다. 이 하드디스크에는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 정황이 담긴 문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가 삼성전자 주식회사인 법인으로 임직원들이 이를 대리하게 된다며 수색 장소에는 사무실뿐만 아니라 물품을 보관하는 제3자의 신체, 주차장 등까지 포함한다고 기재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 측은 검찰의 자료 입수 경위가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맞서고 있다.

삼성 측 변호인은 “검찰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들의 조직적 증거인멸 정황과 압수 처분의 정당성 내지는 저장 매체에서 발견한 전자정보의 증거 능력을 무리하게 연결 지으려 한다”라며 “노조 관련 자료에 대한 영장은 (다스 소송 대납 사건과 달리) 따로 발부 받아서 제시했어야 한다. 이는 현행범 체포에 따른 부수적인 별건 압수수색”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검찰이 심씨를 체포한 이후 48시간 내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삼성 측의 주장대로라면 검찰이 입수한 노조와해 관련 자료와 이를 기반으로 한 진술 자료들이 증거로서 효력을 잃게 된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적법한 절차 따르지 않으면 증거 능력 없어

삼성 측이 노조와해 문건의 증거 효력에 매달리는 이유는 문건에 노조와해 공작 방법 등이 적나라하게 적시돼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검찰에 따르면 문건에는 ▲노조원 밀착감시(일명 ‘심성관리’) ▲거액의 금품지급을 미끼로 노조탈퇴 유도 ▲고소·고발로 압박하기 ▲노노갈등 유발 등 다양한 노조와해 방식이 망라해 있다. 이 문건들이 증거 능력을 갖게 되면 삼성 측에게 굉장히 불리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형사사법의 효율성보다 피고인의 인권보장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증거의 내용과 무관하게 무결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증거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명문화 한 것이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에 규정된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다.

이 조항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적시돼 있다. 불법적으로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해 획득한 2차 증거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게 골자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은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며 인정되기 시작했다. 지나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검찰의 증거수집 절차가 무결하지 않더라도 관련 증거가 무조건 배제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대법원 판례는 “형식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된 증거라는 이유만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 역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한 취지에 맞는다고 볼 수 없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 과정에서 이루어진 절차 위반행위와 관련된 모든 사정인 ▲절차 조항의 취지와 그 위반의 내용 및 정도 ▲구체적인 위반 경위와 회피가능성 ▲절차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 또는 법익의 성질과 침해 정도 및 피고인과의 관련성 ▲절차 위반행위와 증거수집 사이의 인과관계 등 관련성의 정도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 등을 전체적·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수사기관의 절차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해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하여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삼성 측은 문건 내용에 대해 “과격한 용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교육용 참고자료”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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