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감독 허술함 덮기 위한 엄벌주의 지양해야

“항공산업 제도개선 방안은 향후 선제적 대응을 위한 개선안이다. 올해도 일련의 사건이 있지 않았나."

최근 기자와 통화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 같이 말하다가 '일련의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돌연 말을 멈췄다. 짧은 침묵 사이에서 올해 국토부가 골머리를 앓았던 ‘일련의 사건’들이 스쳐갔다. 대한항공, 진에어 등 일부 항공사 뿐만 아니라 국토부도 올해 유례없이 따가운 여론 질타에 골머리를 앓았다.

논란의 발단은 올해 4월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의 폭행 혐의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조 전 전무가 외국인 국적으로 진에어 등기 이사에 6년간 재직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토부의 소홀한 관리‧감독에 대한 지적으로 불씨가 옮겨 붙었다. 국토부는 자체 감사를 통해 담당직원을 처벌하고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답을 내놓고도 여론 불길이 식지 않자 지난 5월 3년이나 지난 ‘땅콩회항’ 사건 당사자들에게 징계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늑장대응’ 비판과 ‘칼피아’ 논란만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납득할 수 없는 애매한 기준과 상충되는 법안, 소홀한 관리‧감독, 그럼에도 불식되지 않는 업계 유착 논란은 여론 비판과 반발에 힘을 싣는 데 충분했다.
 

국토부는 최근 업계 쇄신을 공언하며 지난달 14일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갑질’ 이슈를 빚은 항공사 임원의 재직 자격을 해지하고, 해당 업체에 사업상 불이익을 주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여전히 애매모호한 기준들을 담고 있어 논란의 불씨를 심어 둔 모양새가 됐다.

업계가 가장 반발하는 지점은 ‘갑질’ 이슈를 빚은 항공사 임원의 재직 자격 제한 건이다. 해당 제도개선안이 입법화될 경우 형법, 공정거래법, 조서범처벌법, 관세법 등 법률을 위반한 항공사 임원은 재직에 제한을 받을 전망이다. 기존 항공 관련법 위반에만 국한했던 임원 제한 기준을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기존 업계선 임원 개인의 잘못을 기업 전체의 잘못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과잉 적용이며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사실상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기 위한 견제책이란 지적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토부가 판단하는 '사회적 물의'의 기준도 다소 광범위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제도개선방안엔 항공사 임원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업체의 경우 최대 2년간 신규 운수권 배분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제시됐으며, 사회적 물의의 종류로는 폭행, 배임‧횡령, 일감몰아주기, 조세포탈 등이 언급됐다. 

 

국토부는 사법 판결과 무관하게, 항공사 임원의 위법 혐의만 불거져도 ‘물의를 빚었다’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물의'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질문하자 국토부 관계자는 단순히 “올해도 일련의 사건들이 있지 않았나”라며 말을 아꼈다. 해당 제도개선안은 내년 상반기 중 입법화를 거치면서 시행령으로서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보이나, 그 전까지 행정당국의 모호한 엄벌 조치는 업계 불안감을 부채질하기 충분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감독, 관리하는 여타 업계와의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항공운수업에만 내려진 강경책은 사실상 업계 유착 논란을 지우기 위해 정도를 넘어선 과잉규제로밖에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번 개선방안엔 항공재벌에 대한 처벌을 넘어 기울어진 업계 구조에 균형감을 부여하겠다는 취지도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보폭을 넓힌다고 하나 여전히 신규 운수권은 대형항공사가 70%가량 차지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이 같은 구조를 지적, 지난해 독과점 시장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국토부가 여타 사업자들에게도 사업 확대의 기회를 주겠다는 속내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취지가 어떻든 방식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애매하고 모호한 기준은 행정당국인 국토부가 업계 유착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내놓은 꼬리 자르기식 강경책이란 비판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여론 동정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관성 있는 정책 방향성을 내세워야 할 때다. 단순히 강화한 엄벌조치는 허술한 관리, 감독을 덮기 위한 강경책으로 풀이될 공산이 크다. 

 

업계 쇄신은 행정당국인 국토부에게 달렸다. 경제 처벌을 가하는 사정기관이 아닌 행정당국으로서 중립을 지킬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 기관의 경제 처벌은 기업의 경영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칼날을 제대로 겨눴는지 재차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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