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피해 사건 뒤늦은 승소 판결…‘사법 농단’ 사태로 법관 소명 되새겨야

“본인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한민국 판사는 모두 임용과 동시에 대법원장 앞에서 선서를 한다. 요즘은 법관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와 원칙을 담은 이 선서문에서 ‘양심’과 ‘국민’이라는 두 단어가 특히 도드라져 보이는 시절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이라는 바탕’ 위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법관은 그래서 ‘코트(court)’ 맨 위에서 누구보다 가장 큰 권위를 자랑한다. 법관이 법정에 등장할 때 원고와 피고, 그리고 방청객까지 모든 이들이 그의 착석을 기다리며 서 있는 것도 양심과 국민을 내세운다는 그 고귀한 위상 덕분이다.

지난 11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김성주 할머니(89)가 휠체어에 실려 법원청사를 나오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수많은 카메라와 취재기자들에 둘러싸인 채 김 할머니는 두 손을 꼭 쥐고 말문을 열었다.

“나는 공부한다고 (일본사람들에게) 끌려갔는데 그게 거짓말이었요……그때 나는 피를 얼마나 흘리고,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령 탓에 김 할머니의 숨은 무척 가빴다. 하지만 70여년 세월 동안 겪은 고통이 가시지 않은 듯 할머니의 가쁜 숨결에는 울분이 군데군데 깃들어 있었다.

이날 대법원은 김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5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1억7000만원~1억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역시 같은 날 대법원은 고(故) 박창환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23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각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파기환송 후 원심을 확정했다.

이보다 한달 앞선 지난 10월 30일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실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에서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만이었다.

최근 일제강점기 발생한 피해 사건에 대한 우리 사법부의 판결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번 대법원의 연이은 결정으로 대한민국 법정에서 대기 중인 여러 배상 판결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연이은 승소 소식에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일본 제국주의에 피해를 본 사연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하나로 모아졌기 때문이다. 

“(승소한) 오늘은 참 기쁘면서도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피해의 가해자인 일본 정부·사법부가 피해자들을 철저히 외면해온 것과 진배없이 대한민국 대법원 역시 자국민의 애한을 외면해왔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은 대법원 계류 5년 만에, 근로정신대 피해자 사건의 경우 2015년 사건 접수 후 3년 동안 별다른 이유 없이 결론을 미뤄왔다. 길어진 시간만큼 노년의 피해자들이 흘린 눈물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피해 사건을 대한 대법원이 더욱 서글픈 것은 그 배후에 ‘사법 농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의 뒷거래로 재판을 의도적으로 지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정치권력과 결탁해 본연의 임무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사법부를 삼권 분립의 마지막 보루로 여긴 모든 이들에게 이는 충격적이다.  


물론 최근 드러나고 있는 전임 사법부의 사법 농단 사태를 조직이기주의 산물이자, 사법부 윗선의 책임이라고 미룰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사법부 독립의 핵심과 법관 개개의 독립성은 무관하지 않다. 

 

​법학자 크리스토퍼 M. 라킨스(Christopher M. Larkins)는 사법권 독립을 공정성(impartiality), 정치적 절연(political insularity), 제도적 타당성(institutional relevance) 등 세 가지 개념으로 나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관의 존재를 ‘정치적 목적에 의해 조정되지 않고’, ‘분쟁의 당사자에 대해 공정하고’, ‘정부 행위의 합법성을 규제하고 법적 가치와 헌법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권력을 지닌 이로 규정했다. 사실상 법관 그 자체를 사법권 독립의 핵심으로 여긴다고 본 셈이다.  

 

지금이라도 일제강점기 피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사법부 개혁을 논의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법관의 임무에 대해 되새김질해야 한다. 

 

법관들은 임용 시 자신들이 약속했던, ‘양심’과 ‘국민’, 두 단어의 약속에 조직적이든 개인적이든 얼마나 철저했던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전대미문의 사법부 수장에 대한 ‘화염병 테러’가 발생할 지경까지 추락한 대한민국 사법부 개혁의 첫 시작점은 여기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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