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신경 쓸 때 아냐”…“통신 모르는 수장들 망 투자 안 하더라”

노태석 전 KT 부회장이 28일 시사저널e 사옥에서 이동통신사 망 관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김률희 PD
지난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로 통신 대란이 일어나자 KT를 떠난 임원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과거 KT 근무 당시 망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노태석 전 KT 부회장의 애통함은 남달랐다. 30년 이상 KT에 근무하면서 퇴사하는 날까지 망 관리를 걱정하던 노 전 부회장을 28일 시사저널e 사옥에서 만났다.

노 전 부회장은 KT에 입사해 통신망 관리 등의 업무에 투입됐다가 2005년에 KT부산본부장, KT 마케팅부문장 부사장을, 2008년에 KTH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09년에는 통합KT의 초대 홈고객부문장 부사장을 맡았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KT 부회장직을 수행해 통신업계 원로로 통한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나.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애정을 갖고 근무한 회사다. 이런 일을 겪게 되면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잘 안다. 하지만 늘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내일 또 일어날 수도 있다. 계속 걱정했다. 지금도 걱정이 많이 든다. 현 이동통신사들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한다. 보이는 곳에서는 아주 잘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허술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우리가 쓰는 데이터 양과 정보량이 엄청 늘어났다. 단말기 기지국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실제로 수많은 정보들은 땅 밑에서 왔다 갔다 한다. 눈에 안보이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있지만 지하에 있는 망들이 매우 중요하다. 통신망은 애초에 지하화 시설 기반 사업이기 때문에 뿌리가 중요한데 관리를 소홀히 했다. 전문 인력을 감축하고 투자를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야간에도 숙직을 하면서 상황을 살폈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심지어 아무도 근무하지 않는 무인국사도 있다. 아현지사도 사람이 많이 줄었다.

아현지사는 D등급 시설이다. 그렇다면 A~C등급은 안전한가.
그곳에는 스프링클러와 감시시스템이 있고 백업 시스템도 갖추고 있을 것이다. D등급보다는 물론 안전할 것이다. 확인을 해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 없지만 이런 식의 소홀함이었다면 A~C등급 역시 향후에 어떤 위험이 없을 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통신 마비가 어떤 의미인가.
예전에는 전화 하루 이틀 안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통신이 안 되면 아무 것도 못한다. 당장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못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위험하다는 얘기다. 재앙이다. 의료, 거래소 등 모든 것이 통신망을 기반으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이 기반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전부가 무너진다는 의미다. 국가의 마비다.

KT 근무 당시에도 이런 조짐이 보였나.
그랬다.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지만 듣지 않더라. 통신 모르는 이들이 수장돼서는 망 투자를 안 하더라. 지금 문제가 없는데 낭비가 아니냐고 하더라. 그저 경영 효율화를 위해서 인건비를 절감하려고 하니 관리하는 직원들을 포함해 인력을 감축하더라. 이런 여파로 주기적으로 하던 점검 등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허술함은 화재뿐 아니라 시스템 고장, 공사 장애, 지진, 홍수 등 다양한 상황에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지금 현장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나.
벌벌 떨고 있다. 현장에서는 매일 지하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위험들을 다 알고 있다. 이들이 위험을 얘기해봤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단계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땅 밑 시설을 관리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런 전문가들에 대해 지원도 잘 해주고 이들의 의견도 잘 들어줘야 이들의 사기가 올라갈 거다. 그래야 통신망이 튼튼해 질 거다.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하나.
정부가 나서야 한다. 현재 근본적인 대책이 안 나왔다. 스프링클러와 CCTV가 대수가 아니다. 감시시스템 설치해도 내팽개치면 그만이다. 국가가 공익을 위해 이통사가 스스로 점검하도록 사업자에게 강요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안전관리에 나서야 한다. 안전관리 기구를 만들고 수시로 안점점검을 하고 장애 발생 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건 발생 당시 정부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 와이파이를 열어주라고 명령해 국민들을 보호했어야 했다. 모바일은 와이파이가 대부분 가능하지 않은가.

이통사가 해야 할 일은.
한쪽에 장애가 발생하면 다른 길로 우회해서 복구할 수 있는 이원화 작업을 해야 한다. 반드시 투자를 해서 보강해야 한다. 아랫단에 가입자 쪽으로 이어지는 망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유무선 이원화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빠른 복구가 가능한 유무선 이원화에도 투자를 해야 한다. 한 통신사에 장애가 생기면 다른 통신사가 경쟁하지 않고 공공성 측면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

이통사는 여태 뭐했나.
이통 3사 모두 돈 번다고 정신이 없었다. 우리나라 이통사는 홍보하고 쇼를 하는 것에는 강하다. 하지만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꾸준히 감시하고 관리하는 운영보전, 장애대책, 투자에 약하다. 1강3약이다.

전화국도 줄어들고 있다고.
국사가 450개에서 250개로 줄어들었다. 이것은 한 국사당 담당하는 고객이 엄청 많다는 얘기다. 근데 이 국사를 더 줄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국사가 100개로 줄어들고 전체 고객이 2000만명이라고 가정하면 한 국사당 평균 20만명을 관리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위험이 더 커진다. 한 국사가 잘못되면 피해는 훨씬 더 커진다는 얘기다. 이것은 재난이다.

전화국을 왜 줄이는 것인가.
비용 때문이다. 일단 국사를 줄이면 건물 자체가 필요 없고 관리하는 사람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 망 관련 전문 인력들은 위험하다고 얘기한다. 집중화시킬수록 안전 관리에 집중해야 할 텐데.

이통사가 큰 비용이 드는 투자를 하려고 할까.
1~2년쯤 단기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해야 한다. 통신은 공공성이 큰 재화다. 갈수록 공공성은 더 커지고 있다. 잠시 돈을 못 벌더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실적에 연연하기보다는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 이러다가는 정말 큰일 난다.

이런 상황에서 5세대(5G)를 상용화하는 것이 옳은가.
5G 주파수를 먼저 쏘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반이, 기초가 튼튼한 것이 먼저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나지치지 않다. 천천히 상용화하는 게 맞다. 데이터 양이 엄청 늘어날 텐데 그만큼 시설 투자도 따라줘야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기반을 더 보강한 뒤 5G를 상용화하는 것이 맞다. 당장 할 사업도 막막하지 않은가.

인터뷰 중간에 노 전 부회장은 현 KT 임원과 통화를 했다. 이 임원에게 노 전 부회장은 통신망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위험하다고 얘기를 하지 그랬냐고 다그쳤다. 출근만 하면 불안에 떨 직원들을 걱정하며 자신도 출근해서 늘 불안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이통사 CEO가 통신 시스템을 이해하고 땅 밑에 관심을 가지길 진정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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