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어 베트남서 경제 관련 대외 행보…전문가들 “북미 대화서 협상력 높이기 위한 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모습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이미 한차례 연기된 북미고위급회담과 관련해 미국은 이달 말 회담 재개를 북한 측에 요청했지만,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중국, 베트남과 투자 유치를 위한 경제 행보를 보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당초 27~28일로 예상됐던 북·미 고위급회담은 사실상 무산된 뒤, 북한은 미국 뉴욕 대신 베트남으로 향했다. 베트남 외교부는 28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오는 29일 베트남에 도착한다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베트남 정부에 “베트남의 경제 발전 모델을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달해, 베트남 정부는 산업단지 시찰 등 경제 전문가들과 리 외무상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 외무상의 베트남행은 교착 상태를 보이는 북미 대화 속에서 미국에게 북한은 여전히 개혁·개방을 할 의지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베트남 외에도 중국과의 경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25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제15회 국제금융포럼(IFF)에 참석한 북한 관료들은 경제 특구를 홍보하면서 해외 투자 유치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행사가 중국에서 열린 만큼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배우려는 의지가 보이면서 내부적으로 경제 개발을 최우선 정책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의 속내는 두 가지로 보여진다. 협상을 통해 핵 리스트를 제출해 대외 관계를 유지하거나 핵을 포기하고 경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북한은 현 상황에서는 핵을 놓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다만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협상력을 키우려는 것”이라며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핵 신고검증을 요구하다보니 북한이 상응조치를 얻기 위해 이에 응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다. 협상 지연을 통해 북한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뜻으로도 보여진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결국 북미 간 지루한 협상이 반복될 것”이라며 “북한은 베트남,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력 갱신을 하려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 리용호 외무상의 베트남 행은 실질적인 경제 협력보다는 사실상 미국에 협상 측면이 더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른 전문가는 북한이 미국과의 회담을 재개하지 않고 경제 개발에 힘쓰는 데는 미국이 여전히 대북제재 예외 인정이나 상응조치를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북한이 가진 건 핵뿐이고, 비핵화 의지를 거듭 표명하고 있음에도 미국이 상응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또 미국은 대북제재 예외 허용을 해주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북한은 미국에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보니 오히려 대외행보를 하려는 것”이라며 “미국의 고위급회담 요청에 침묵을 유지하면서 자국력과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베트남 모델을 배우며 경제에 집중하려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27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국가제일주의’를 내세운 사회주의 강국건설을 강조하는 기사를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노동신문은 이날 1면 전면에 게재한 ‘주체 조선의 공민된 긍지 드높이 사회주의강국 건설을 힘있게 다그치자’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오늘 주체조선의 존엄과 위상은 최상의 경지에서 빛나고 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의 사상이론은 주체조선의 백승의 진로를 밝히는 휘황한 등대이고 최고영도자 동지의 영도는 조국번영의 최전성기를 펼치는 강위력한 추진력”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력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의 혁명 정세는 결코 평온하지 않다”며 “우리 인민이 전대미문의 시련 속에서도 순간의 주저나 동요 없이 줄기차게 전진시켜 올 수 있는 근본 원천은 우리 국가제일주의”라고 보도했다.

◇ ‘자력갱생’ 등 기강 확립 발언 나오며 내부 변화도 감지

지난해 말 노동신문에서 처음 ‘국가제일주의’가 등장했지만 드물게 보이다가, 최근 들어 북미 비핵화 협상이 소강국면에 접어들면서 종종 언급되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리 외무상이 베트남을 가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북한은 베트남, 중국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 모델, 개혁개방 학습 등을 항상 학습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행사 참석을) 연례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홍 실장은 “북한이 북미 고위급회담에 침묵을 유지하는 데는 북미 협상에 대한 문제도 있겠지만 내부적인 요인이 큰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노동신문이나 북한 주요 매체를 보면, 내부적으로 조직적 권력 변화나 사상투쟁 등 진행되고 있는 듯한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자력갱생’, ‘내부적인 기강은 잡겠다’라는 강한 발언들이 매체를 통해 나오고 있는데, 이는 모두 최근에 쓰이지 않던 용어가 재등장한 것을 보면 내부적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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