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째 묵묵부답, 속 타는 주민들…선별적 행정처리 시급

녹물은 기본이고 화장실 오물이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등 상하수도 시설을 갖춰지지 못한 주택들도 많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역류해 골목에서는 한 겨울에도 악취가 진동합니다. 2의 용산 붕괴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이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서부이촌동에서 만난 주민들의 말은 기자의 귀를 의심케 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실제 눈으로 확인한 서부이촌동 일대는 60~70년대 이후 시간이 멈춘 듯 노후화가 심각했다. 오래된 주택들은 누수와 화재, 방음 불량 등 각종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서부이촌동 일대는 2007년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예정부지에 포함됐다. 이에 사업이 추진되는 6년 동안 재건축 사업 등 하지 못하면서 주택들은 방치됐다. 2013년 사업이 무산된 이후에는 슬럼화가 가속화된 상황이다.

 

이에 서울시는 2015년 노후화가 심한 이촌1구역 중산시범아파트 이촌시범아파트·미도연립 세 곳을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하고 재건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재건축 대상인 이촌1구역은 50년 이상 된 건축물이 90%를 차지하며 중산시범·이촌시범 아파트·미도연립 역시 1960~70년대 지어졌다.

 

현재 노후화된 다세대·연립주택 등이 밀집한 이촌1구역은 재건축 조합설립 추진위원회를 설립해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심각성을 파악한 용산구 역시 재건축 사업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서울시에 이촌1구역의 구역지정과 정비계획안 입안을 신청했다.

 

정비계획안에는 기부체납 30%, 커뮤니티시설 건립, 장기 전세임대주택 250여세대 건립, 상업시설 비율 10%, 35층 제한 등 서울시가 요구한 사항들이 모두 담겼다. 서울시가 관련 부서 협의 후 도시계획심의위원회를 거쳐 구역지정이 되면 추진위에서는 구역지정 범위 내에서 조합 설립을 진행할 수 있다. 추진위는 서울시 요구사항들이 모두 포함됐기 때문에 이 절차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촌1구역 재건축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주민들은 서울시가 행정처리에 늦장을 부리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최창호 이촌1구역 재건축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총무는 신청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서울시는 묵묵부답이다요구 사항을 다 들어줬는데 왜 처리를 해주지 않는지 이유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한 주민은 이렇게 늦게 처리할거면 현장에 방문하면서까지 개발을 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판했다.

 

서울시 땅에 지어진 이촌시범아파트의 경우 주민들이 올 8월 시유지매수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서울시는 아직까지 검토 중이다. 그나마 중산시범아파트는 7월 시유지매수신청을 한지 3개월만에 서울시로부터 매수 면적을 정확하게 기재해 다시 제출하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모든 행정처리가 늦춰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용산·여의도 통합개발 언급으로 정부의 집값 안정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분간 용산의 '용'자도 꺼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촌1구역의 경우도 특별한 피드백 없이 시간을 끄는 걸 보면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박 시장은 3선에 성공한 이후 안전, 복지, 경제, 도시재생 4개 키워드를 내세웠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서부이촌동과 같이 안전등급 D등급을 받고도 자체적으로 사업추진이 어려운 지역들이 방치되고 있다. 주민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주택에서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집값 안정화를 위해 정부와 발맞추겠다는 서울시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개발까지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시민의 안전이 시급한 지역은 신속하게 행정처리가 돼야 한다. ‘서울시가 시민이 원하는 개발, 시민의 삶에 꼭 필요한 개발은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박 시장의 원칙이 관철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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